'러브굿 추천도서'에 해당되는 글 37건

  1. 2025.02.02 애거서 크리스티 [커튼] 푸아로의 마지막 사건, 탐정소설의 규칙을 깨다
  2. 2024.11.17 박태원 [천변풍경] 1930년대 서울 청계천변의 풍경을 아름답게 수놓은 자수
  3. 2024.10.24 [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발랄하고 수다스러운 여행기
  4. 2024.10.24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죽음과 절망 속에서의 사랑
  5. 2024.10.17 버트런드 러셀 [서양의 지혜: 그림과 함께 보는 서양철학사] 주관적인 통찰력
  6. 2024.10.16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소설 같은 자서전, 좌파도 우파도 아닌 회색
  7. 2024.10.15 슈테판 츠바이크 [에라스무스 평전] 인문주의, 부활을 꿈꾸다
  8. 2024.10.14 E.T.A. 호프만 [모래 사나이] 기계 인형, 발레 코펠리아 원작 소설
  9. 2024.10.09 에밀 시오랑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절망의 끝에서] 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환희의 노래
  10. 2024.10.08 임철우 [등대] 절망적인 상황에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다
  11. 2024.10.07 아이작 아시모프 [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계속 읽게 하는 비결
  12. 2024.10.05 마르셀 프루스트 [스완네 쪽으로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경이로운 문장
  13. 2024.09.30 버트런드 러셀 [런던통신 1931-1935] 재치와 유머, 그리고 뛰어난 통찰
  14. 2024.09.29 에라스무스 [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 우신예찬 광우예찬] 세상을 바꾼 우스개
  15. 2024.09.29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 유령보다 무서운, 생각의 나사
  16. 2024.09.29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작가의 내면 목소리, 열린책들 번역 문제
  17. 2024.09.29 존 스타인벡 [에덴의 동쪽] 선과 악으로 싸우고 꼬이고 지지고 볶는 두 집안
  18. 2024.09.29 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부조리한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19. 2024.09.25 [세계 자기계발 필독서 50 /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 자아인식
  20. 2024.09.25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인물 묘사의 악마적 탁월함, 번역본 비교 분석
  21. 2024.08.13 아카가와 지로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 힌트 주는 고양이
  22. 2024.08.09 존 딕슨 카 [화형 법정] 오컬트 추리소설의 아름다운 개화
  23. 2024.06.11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울음 같은 웃음
  24. 2024.06.04 줄리안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 아무 페이지나 읽어도 된다
  25. 2024.06.03 리처드 브라우티건 [워터멜론 슈거에서] 꿈과 현실이 맞닿는 자리
  26. 2024.05.29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상상으로 보고 느끼는, 언어의 도시
  27. 2024.05.29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소설 창작 과정 해체
  28. 2024.02.26 존 발리 [캔자스의 유령] 과학적 상상력과 미스터리의 결합
  29. 2022.08.23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러스 애덤스 - 코미디 SF 최종결정판
  30. 2022.08.04 [은하영웅전설] 다나카 요시키 - 일본 SF 대작

커튼
애거서 크리스티
황금가지 2015년

푸아로 시리즈 마지막 사건 | 탐정소설 규칙 세 가지를 어긴 작품

"벨을 울려 커튼을 내리자." 279쪽 커튼을 내린다는 말은 연극의 종료를 뜻한다. 결국 푸아로 시리즈의 마지막, 곧 주인공의 죽음이다. 책 제목 커튼만으로는 알기 힘들지만.

오랜 시간 푸아로 시리즈를 읽어 온 독자한테 '커튼'은 무척 안쓰러운 소설이다. 푸아로의 회색 뇌세포는 여전히 잘 돌아가지만 신체는 이제 다 고장나서 이미 끝이 보이고 있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으니.

푸아로 시리즈의 시작과 끝은 '스타일스 저택'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시작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형적인 미스터리 세팅이었고, 끝은 그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스타일이었다.

끝에서야 범인을 알 수 있다. 푸아로 마지막 사건 소설 '커튼'은 탐정소설의 일반적인 규칙으로 이것 하나만 지키고 나머지는 죄다 파괴해 버린다. 

첫째, 탐정이 범인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헤이스팅스한테는 끝까지 누군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 누구한테도 말해주지 않는다. 독자한테는 물론이다.

둘째, 탐정이 범인을 죽인다. 탐정이 살인자다. 일반적인 경우, 탐정은 범인을 발견하거나 체포는 할 수 있어도 자신이 직접 범인을 죽이지 않는다. 

셋쩨, 탐정이 자살한다. 탐정이 자살하는 탐정소설은 거의 없다. 독자는 탐정의 자살 혹음 죽음을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네 번째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걸작 소설들이 그렇듯, 아주 맨 마지막에서야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있는 식의 이야기 설계 솜씨는 여전히 경이로웠다. 추리소설의 최상극 지점을 찍어 버렸고 이후에 나온 그 어떤 추리소설도 이만큼 절묘한 솜씨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완벽한 작품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라, 좀 억지다 싶은 부분이 있다. 아무도 없을 때 총을 그 사람의 화장대에 두어서 그 사람의 총으로 속였다는데, 너무 운이 좋다. 다른 사람이 그 총을 목격하고 그 사람한테 물어 보지 않았을까. 왜 총을 그렇게 보이게 두었냐고. 소설은 소설이니까.

2021.11.15

내가 이 소설을 몇 번째로 읽었는지 알려면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처음에는 해문에서 펴낸 하드커버로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는데, 표지가 간신히 붙어 있었다. 다음에는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에서 나온 것으로 읽은 듯 하다, 2014년쯤에. 이번 세 번째로는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으로 펴낸 책으로 읽었다. 2018년.

4년 세월이 흘렀지만, 아쉽게도 나는 추리소설 '커튼'의 범인을 기억하고 있었다. 트릭도 어느 정도는 생각이 났다.

따라서 독자의 입장이 아니라 작가의 입장에서 읽게 되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한 것이 아니라 과연 범인을 최대한 모르게 하면서 힌트를 어떻게 뿌리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추리소설에 짜놓은 플롯과 트릭은 워낙 복잡해서, 설명을 다 읽은 후에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다. '커튼'은 그나마 다른 작품에 비해서 덜 복잡한 편이다.

이 글에서 애써 그 트릭과 전개과정을 분석하고 설명할 마음은 없다. 왜?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재미는 바로 그 수수께끼, 거의 기적에 가까운 범죄 수법에 있기 때문이다. 문장은 평범하고 인물 묘사는 대충임에도 그 신기에 가까운 범죄 트릭은 최고 수준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커튼'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나오는 이아고를 자신의 스타일로 재창조했다. 소설에서도 책 '오셀로'를 등장시키고 종종 언급한다.

그러니까 살인이나 자살을 직접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보다 한층 교활하게 살인이나 자살을 하도록 부추기는 범인을 등장시킨다.

처음 읽었을 때는 엄청난 충격이다. 기존 추리소설의 일반 규칙을 다 배반해 버리다니! 추리소설에서는 일반적으로 거의 하지 않는 짓을 셋이나 해 버린다.

첫째, 탐정이 이미 살인범이 누구인지 안다. 푸아로는 헤이스팅스한테 그렇다고 말하면서 살인범이 누구인지는 정작 안 알려준다. 언제나 그렇듯 그런 식으로 독자를 약올린다.

둘째, 탐정이 살인범을 살인한다. 가장 놀라웠다. 살인을 하는 탐정이라니.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이미 어느 정도 예감되어 있긴 했다.

셋째, 탐정이 자살한다. 탐정은 시리즈를 잇기 위해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런데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다고? 소설가가 자기 밥줄을 끊는 꼴이다.

'커튼'의 영어 원서 제목은 Curtain: Poirot's Last Case다. 푸아로의 '마지막' 사건이다. 번역 제목에는 부제인 이 마지막 사건을 안 써서 우리나라 독자는 종종 손해를 보기도 한다.

'커튼'이 푸아로가 등장하는 마지막 책이라면, 당연히 독자 입장에서는 가장 나중에 읽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모르고 그저 제목 '커튼'만 보고 덥썩 집어 읽었다가 쏟아지는 다른 소설의 스포일러와 푸아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정신이 어찔해지는 것이다.

푸아로가 처음 등장하는 소설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과 'ABC살인 사건'과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읽은 다음에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안 그러면 이 책 '커튼'을 읽다가 지난 책들의 범인과 수법을 알게 되니까.

추리소설은 한 번 읽으면 다시는 안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범인을 알고 그 수법까지 안다면, 읽는 재미가 없으니까. 추리소설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여러 번 읽겠지만 독자로서의 재미는 거의 맛볼 수 없다.

기억력이 좋지 못한 이들한테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언제나 새 책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범인도 수법도 다 잊어 버렸을 테니. 망각의 축복이어라!

하여 이 책 '커튼'을 처음 읽는 사람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그 사람은 아마도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바로 당신이겠지.

2018.09.04.

커튼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해문출판사


애거서 크리스티 커튼 - 추리소설의 근본문제 정면 돌파하기

애거서 크리스티는 '푸아로가 죽는 소설'을 미리 써놓았다. 발표는 자신이 죽기 직전에 한다. 짐작하기로는 아서 코난 도일처럼 자신보다 자기 창조물이 더 인기 높은 게 싫었을 것이다. 또 그토록 오래 추리소설을 쓸 거라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커튼'은 '푸아로의 퇴장'으로 추리소설의 근본문제를 정면 돌파한다. 범죄소설은 수수께끼 자문자답 살인 자살의 감옥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탈옥을 감행한다. 모든 규칙을 깬다. 탐정이 살인하고 자백하고 자살한다. 증거 없는 추리로 정의를 실현한다.

이 소설의 범죄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에 나오는 이아고를 닮았다. 자신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범행을 하도록 부추긴다. 타인의 감정을 이용하고 거짓을 진짜처럼 보이게 조작해서 그들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게 유도한다. 

스타일즈 저택에서 시작한 푸아로의 살인범 사냥은 스타일즈 저택에서 끝났다. 허구의 인물 에르퀼 푸아로의 죽음은 실제의 신문 '뉴욕 타임스' 부고 기사로 실린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트릭의 반전 기술력을 최고로 발휘했다. 추천한다.

커튼 - 금고 속에 넣어두었던 야심작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 소설은 본인이 죽기 직전에 발표되었지만 훨씬 이전에 완성해서 금고에 넣어 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의외로 덜 알려져 있고 다른 작품에 비해 대중적 인기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 허기야 애정하는 주인공 탐정이 죽는 소설을 뭐 좋다고 읽으려고 하겠는가.

푸아로 시리즈 읽다가 거의 맨 마지막에 할 수 없이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문 번역본은 제목에 푸아로의 마지막 사건이라고 안 붙여서 무심코 읽었다가 낭패를 당하는 이들도 많다.

커튼은 추리소설 장르 규칙 전반을 때려부시고 어기는 소설이다.

1. 이야기 시작할 때부터 탐정이 범인을 알고 있다. 엥?

2. 탐정이 직접 정의실현을 위해 살인한다. 엥?

3. 탐정이 자살한다. 엥?

특히 마지막은 탐정 푸아로가 가톨릭 신자인 점을 생각하면 반전이 아니라 배신이고 신성 모독과 같은 것이었다.

커튼은 작가의 야심작이었던 것 같다. 

내가 셰익스피어보다 잘 쓴다고, 감히 직접 말할 수는 없지만 속으로는 그런 야망을 지녔던 듯하다. 

커튼에서 오셀로가 반복 인용되어 나온다. 게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카인의 표식을 갖다 붙이는 걸 보면 더욱 그런 심증을 굳히게 된다.

추리소설의 그 자체의 한계로, 혹은 본질로 인해 기존 순문학을 문학적으로는 능가하지 못한다. 문학적 성취는 재미있는 오락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애 여사는 최선을 다했다. 푸아로는 탐정으로서 악을 징벌하여 결백한 이들의 삶을 구한다. 문학적 감동은 딱히 없지만 그래도.

다시 그럼에도 애 여사의 문학적 성취는 확고하다. 성경보다 많이 팔렸으며 셰익스피어보다 많이 읽힌다. 누가 문학의 승자인가.

20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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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풍경 
박태원 지음
깊은샘 펴냄
1998년 발행 절판

박태원은 북한에서 망막염으로 실명하고 고혈압으로 전신불수가 되었음에도 '갑오 농민 전쟁'을 구술하여 완성시켜 북한 최고의 역사 소설가라는 호칭을 받았다. 남한에서는 기교파 작가나 세태 소설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대한 연구나 비평은 적은 편이다.

월북 작가들에 대한 연구는 아마도 통일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될 듯하다. 정치 문화 사회적 상황이 그리 좋지 않고 문헌을 구하기도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태원의 장편소설 '천변풍경'에 쏟아진 평을 보자.

"나는 박태원 씨의 '천변풍경'에서, 톨스토이의 만년의 작품에서 받는 것과 방불한 감동을 받는다." 춘원 이광수의 평이다.

"태원은 확실히 대 춘원을 능가하고 서울 중류 가정 시어머니, 며느리, 시뉘, 올케의 풍파를 잘 쓴다는 거벽 상섭을 물리칠 수 있다." 월탄 박종화의 서평.

"여하간 이 소설은 우리 문학의 새 단계를 표시한 작품으로 많이 읽히고 또 연구되어 족한 작품이다." 임화.

그러나 박태원의 이 작품은 한국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지도 연구가 되지도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독서가들한테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읽혀지는가. 그것은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는 우리네 평범한 삶에 대한 작가의 놀라운 묘사력과 관심과 애정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일상 생활을 완벽하게 글로 잡아 낸 소설은 흔치 않다.

이 작품 이전에 쓴 여러 단편소설에서 나타나듯, 그의 묘사력은 독창적이다. 물 흐르듯 쉼표로 이어지는 지문과 대사가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고 그 시대의 서울 말씨와 풍속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청계천 빨래터, 이 곳에서 소설 '천변풍경'을 시작한다.

모두 50절로 나누어져 있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지는데 특별한 결말 없이 끝난다.

그해 겨울에서 다음해 겨울까지, 일 년 동안의 청계천변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씨줄 날줄로 교묘하게 연결시켜 천변 '풍경'을 완성시켰다.

어쩌면 단순하게 일상 생활을 그린 듯하지만,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애면글면 사는 사람들. 시대는 변했지만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이다.

박태원의 장편소설 '천변풍경'은 1930년대 서울 풍경을 꼼꼼히 섬세하게 글로 수놓은 아름다운 자수(刺繡)이다. 그 자수는 화려하지 않다. 그 자수에는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들, 기쁨, 슬픔, 웃음, 죽음, 고달픔, 사랑이 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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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스티브 헬리, 밸리 챈드라새커런 지음
권성환 옮김
중앙북스 펴냄
2009년 발행 절판

친한 두 사람이 세계일주를 하기로 결심한다. 단, 비행기를 타면 안 된다. 그러면 너무 쉽잖아. 가장 빨리 도착한 사람에게 가장 비싼 술 한 병을 주기로 한다. 이렇게 시작한 둘의 여행은 같이 사이좋게 가는 길이 아니었다. 홀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지구를 돌기 시작한다.

글은 그리 무겁지 않은 듯하면서도 살짝살짝 날카로운 데도 있다. 유머 작가들답게 문체는 발랄하고 수다스럽다. 약속은 깨기 위한 것일까? 한 사람은 약속을 깨고 비행기를 타고 편하게 일찍 돌아오지만, 다른 한 사람은 우직하게 약속을 지켜 불편하게 여행하며 늦게 도착한다. 술도 반씩 나눠 마신다.

스티브가 규칙을 어겨서 밸리가 이긴 꼴인데, 밸리는 이 승리에 씁쓸해하지만 나름 자부심을 갖는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은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겪었던 곤란과 어려움에 정비례한다." 434~435쪽 

여행 같은 인생, 인생 같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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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L'Amant 1984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민음사 펴냄
2007년 발행

차분하면서도 격렬한 문체

작가의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 읽으면 읽을수록 글이 쓰고 싶다. 문체가 차분하면서 격렬하다. "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34~35쪽)

사건을 시간적/논리적 순서가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쓰고 있어서 읽기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프루스트에 익숙한 뒤라서 수월하게 읽었다.

문장 호흡이 자연스럽고 매끄러워 잘 읽힌다. 김인환 교수가 문장을 많이 다듬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의 번역 문장에는 문학 전공 학자들의 고지식한 직역과 소설가 번역자들의 멋대로 의역이 없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단순히 자전적 소설이라 하기에는 모호하고 복합적이다. 소설인가, 회고록인가? 글의 화자는 '나'라고 했다가 '그녀'라고 했다가 왔다갔다 한다. 1인칭과 3인칭으로 오가며 떠오르는 기억에 따라 글을 써내려간다. 기억의 공백을 상상으로 채운다.

가난한 백인 여자 아이와 백만장자 중국인 남자의 사랑 이야기? 보기에 따라서는 섹스만 줄기차게 해댄 한때의 육체적 쾌락이자 현실 도피다. 추억은 말하는 이를 통해 아름답게 채색되기 마련이다.

문학은 기억과 상상의 언어 결과물이다. 사실을 알고 싶다면 시, 소설, 희곡, 수필이 아니라 역사책이나 언론 매체물을 읽으면 그만이다. 사실 이상의 것, 경험 이상의 것, 인생 이상의 것을 경험하고 이해하고 느끼고자 하는 이들한테 문학 작품이 필요한 법이다.

작가의 회상하는 목소리는 강물의 이미지와 겹치며 조금씩 나아간다. "그 영상은 강을 건너는 동안 줄곧 이어졌다."(11쪽) 전반적으로 어둡고 강렬한 감정의 문장으로 지옥 같은 가족사와 자신의 첫사랑을 그려낸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단절적으로 말한다.

영화 '연인'에서는 쇼팽 음악이 흐르며 뒤늦게 사랑을 깨달은 소녀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소설 '연인'에서는 간결하고도 강한 마지막 문장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137쪽) 작중 화자가 사랑을 재확인하며 소설은 끝난다.

문장과 문장, 사실과 사실, 감정과 감정 사이에 긴장감을 조성하며 강렬한 느낌을 남기는 문체가 인상 깊었다.


죽음과 절망 속에서의 사랑

이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내 기억과 달리, 온통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몇 문장이 이 모든 어둠을 걷어낸다.

"우리는 연인이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다고.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결코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을 거라고. 죽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이 문장을 다른 소설에 그대로 끼워 넣었다면 흔해 빠진 로맨스소설의 유치한 대사라고 여겼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만 빛은 강렬한 것이다. 문장은 어둠 속에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소설은 예술이 된다.

소설과 영화에서 여주의 묘사는 비슷할 뿐 똑같지는 않다. 영화 쪽에서는 순화한 모양새다. 영화는 직접 보여주지만 소설은 보여지는 것을 상상하게 하는 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소설은 영화에 비해 독자의 상상력을 많이 허용한다.

여자 주인공의 모습은 광대에 가까운 것이다. 마르고 어리고 예쁜 소녀한테 엉뚱한 모자와 황당한 신발이라니. "광대 같은 모자를 쓰고 금박으로 장식된 구두를 신은 나"라고 묘사되어 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어머니는 작가와 글쓰기를 존중하지 않았다. "난 그따위 일에는 관심 없다. 그건 가치도 없고, 직업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 일종의 허세에 불과해. 유치한 생각이야."

딸이 쓴 책, 그것도 여러 나라에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가 된 책 '연인'에 이렇게 묘사되었다. "어머니는 미친 여자였다." 그렇게 불멸의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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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지혜:
그림과 함께 보는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지음
서광사 펴냄 | 1990년 발행

러셀은 수학자답게 이 책을 아주 꼼꼼히 썼다. 사회적 정치적 시대 상황과 흐름, 철학자의 삶과 철학 요약, 비평, 영향 등 빠짐없이 쓰면서도 끊이지 않는 철학사의 흐름을 계속 짚어낸다. 특히, 수학적 철학에 대한 그의 설명은 명쾌하다. 수학과 담쌓고 지내는 나조차 수학 공부를 하고 싶게 할 정도다.

글쓴이는 이성을 중시하는 서양철학의 전통을 벗어나려는 철학을 무척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성을 벗어나려는 철학에 대한 논평은 가차없이 매섭게 비수를 날린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철학은 심오함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몇 줄로 요약해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가끔 그다지 쓸모없는 사실을 나열한다 싶은 부분이 없진 않았다. 매끄럽지 못한 문장, 번역의 문제였을까? 지루하게 반복되는 문장, 강조였을까?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은 재빨리 끝낸다.

이런 결점이 생기는 까닭은 러셀이 서양철학사를 자신의 통찰력에 의해 일관성과 흐름을 유지하며 썼기 때문이다.

객관적 서술은 지은이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이기에 적당치 않다. 사실만을 나열한 교과서식 서양 철학사는 재미가 없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많이 풀렸다. 그와 동시에, 많은 부분들이 의문으로 남았다. 많이 알수록 많은 걸 모른다는 게 이제야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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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 지음
이다미디어 펴냄
2014년 발행 개정판
전자책 있음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2005년 발행 초판

자서전인데, 소설처럼 읽힌다. 문장 사이에서 뿜어내는 광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는 것 같다. 극한까지 가보는 인생, 어디서 읽은 것 같아 생각해 보니, 폴 오스터의 소설 '달의 궁전'의 주인공을 닮았다. 정규 학업 과정이 없이 독학으로 최고의 작가가 되는 과정을 보면, 잭 런던이 떠오른다.

에릭 호퍼는 독학하는 과정에서 글쓰기를 익혔다. "돈을 별로 쓰지 않고 살면서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수학이나 화학, 물리학, 지라학 등의 대학 교재로 독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억을 돕기 위해 노트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는 일에 열중했고, 제대로 된 형용사를 찾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27p

호퍼의 글쓰기는 자발적인 본능이다. "내게 글쓰기는 육체적으로 꼭 필요한 일입니다. 나는 좋아지는 것을 느끼기 위해 글을 써야 합니다." 176p "나는 써야 하기 때문에 쓴다. 나는 나 자신을 작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166p

종종 아포리즘 가득한 문장은 니체 같은 통찰을 보여준다. "자기 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이성적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를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희망이 분출할 때는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61~62p

미국 자본주의 성찰은 대체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밑바닥 노동자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면서도 책을 많이 읽은 지성인인 그는 자본주의를 이념의 공격 대상이 아니라 그저 삶의 한 형태로 관조한다.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돈과 이윤의 추구는 사소하고 천박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상한 동기에 의해서만 활기를 띠게 된다면 사람들이 움직이고 분투하는 곳에서 영위되는 일상 생활은 빈약하고 궁색해지기 십상이다." 159p

좌우 양쪽 모두한테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이 별종은 정치적으로 회색을 추구하는 예술가들한테 사랑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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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원더박스 펴냄
2020년 발행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문은 유명하다. 인물의 감정을 잘 표현해서 생동감이 넘친다.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을 주로 썼다. 열정적인 인물을 골라 썼다.

츠바이크는 왜 에라스무스를 택했을까? 나치 독일의 폭력에 한없이 시달려 마침내 아내와 동반 자살하기까지, 그의 고뇌가 에라스무스의 삶과 겹친다.

전쟁은 광기다. 전쟁을 부추기는 정치꾼들은 이성보다 감정을 강조한다. 그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만을 요구한다. 우리편만 옮다. 공평무사한 이성주의자는 회색분자로 몰린다.

겉보기에는 에라스무스 평전이다. 안을 들여다 보면 츠바이크의 소망이다. 인문주의의 부활을 애타게 바랬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글쓴이의 꿈이다. 이성의 평화보다 감정의 전쟁에 열광하는 세상에서, 그는 에라스무스의 삶을 자기가 가야할 길로 여겼다.

인문주의의 죽음을 떠들어대는 오늘날, 서양 인문주의의 시작이었던 에라스무스의 삶을 되짚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의 삶을 읽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으리라. 처음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뜻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자.

나는 알고 있다. 더는 사람들이 책을 즐겨 읽지 않는다는 걸. 더는 좋은 책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걸. 영화와 텔레비전 오락물로 시간을 보내기조차 힘들어 한다는 걸. 인터넷 클릭하기 바쁘다는 걸. 당장에 이 고독과 이 절망을 잊기 위한 순간적 자극물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고 있다는 걸.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좋은 글이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위로받은 사람들이 선을 행하리라는 것을.

권력의 그늘 아래에서도 모든 책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조용한 방에서 좋은 책을 읽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의 글을 쓰는 것, 어느 누구의 지배자도 하인도 되지 않는 것, 이것이 에라스무스의 인생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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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나이
Der Sandmann (1816년)
E.T.A. 호프만 지음
김현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1년 초판
2020년 개정판

2001년판 표지에 나온 사람은 모래 사나이가 아니라 작가 호프만이다. 무섭게 생기긴 했다만 그래도 착각하진 말자.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는 발레 '코펠리아'의 원작 소설이다. 발레극은 기계 인형이라는 소재를 중심에 가져다가 각색했다. '코펠리우스'를 빼고는 등장인물 이름이 죄다 바꾸었다. 

'코펠리아'가 아니라 '올림푸스'다. 여자 주인공이 기계 인형 흉내를 내는, 발레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원작에는 없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 나타나엘은 정신이 돌아버려 공포에 질려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발레는 유쾌한 희극이나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공포소설이다. 혹시 스티븐 킹 소설 같은 재미로 읽으려 드는 분이 있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다만, 옛날 소설이라 그리 쉽게 읽히지 않는다.

모래 사나이는 서양의 민간 설화다. 어린이 눈에 모래를 뿌려 잠들게 하는 귀신이다. 애들 일찍 재우려고 꾸며낸 이야기 같다. 내 상상으로는 귀여운 요정처럼 생긴 것 같은데, 전혀 아니란다. 무서운 존재의 대표자로 거론되는 모양이다. 메탈리카의 노래 '엔터 샌드맨'이 바로 이 샌드맨이군! 소설의 일부를 인용해 보면 이렇다.

"그건 아주 나쁜 사람인데 자러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와서 눈에 모래를 한줌 뿌린단다. 눈알이 피투성이가 되어 튀어나오면 모래 사나이는 그 눈알을 자루에 넣어 자기 아이들에게 먹이려고 달나라로 돌아가지. 그의 아이들은 둥지에서 사는데 올빼미처럼 끝이 구부러진 부리로 말 안 듣는 아이들의 눈을 쪼아먹는단다." 2001년판 16쪽.

작가는 이 민담을 끌어다가 소설에서 내면이 분열된 주인공을 묘사한다. 고등법원 판사가 이런 소설을 쓰다니. 이중생활자네. 이야기의 첫머리에 낭만주의자 나타나엘의 편지와 계몽주의자 클라아의 편지가 나온 후, "친애하는 독자여!" 하며 작가가 직접 말을 한다. 몽상, 동경, 환상, 꿈 등이 이성, 질서, 논리, 현실과 날카롭게 대립한다.

사람들이 나무 인형한테 속아넘어간 후 혼란에 빠진다. "자동 인형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영혼 깊이 뿌리 박혀 실제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형상을 한 것에 대한 심한 불신이 생겼다. 이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 인형이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기 위해 애인에게 약간 박자가 틀리게 노래하고 춤추라고 요구하고, 책을 읽어줄 때 수도 놓고 뜨개질도 하고 강아지와 장난도 하고, 무엇보다도 가만히 듣고 있지만 말고 이따금 무슨 말을 하되, 진정한 사고와 감정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할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2001년판 66쪽. 왜 이렇게 웃긴다냐.

'사람처럼 보이는 기계 인형'이라는 아이디어는 이 소설 발표 당시 1816년에는 충격이었으리라.

SF 호러 애독자라면 읽어 볼만한 고전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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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Pe culmile disperării 1934년

에밀 시오랑
강 1997년

:: 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환희의 노래

절망, 고독, 허무와 정면 대결
극단에서 느끼는 희열
잠을 잘 수 없는, 그래서 미칠 것 같은

에밀 시오랑의 [절망의 끝에서]를 읽었다. 읽는 내내 열광, 동감, 환희.

이 책을 읽고자 마음먹은 것은 제목과 작가가 쓴 서문과 책표지에 있는 작가의 사진 때문이었다. 절망의 끝에서, 지금 나의 상태가 아닌가. 서문에 글쓴이는 "내게 일어난 중대한 현상, 말 그대로의 재난은 계속되는 불면, 그 쉼없는 공백이었다." 라고 쓰고 있는데, 나 역시 불면으로 지난 대학 1, 2학년 생활을 보내야 했었다. 그 생활은 지옥이었다. 그의 얼굴은 한마디로 악마다. 광기가 느껴지는 저 번뜩이는 눈. 절망과 고독을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철학자의 무서운 얼굴이 이 책을 읽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쓴이의 이름이 낯설다. 옮긴이 김정숙 씨는 에밀 시오랑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루마니아 출신의 가장 프랑스적인 산문가, 파리 대학에서 끼니를 해결한 영원한 학생, 루마니아에서 잠시 철학 교사직을 맡았던 것 외에 평생 한번도 직업을 가져보지 않았으며 "뤽상부르 공원을 조용히 거닐고 싶다"는 핑계로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사회의 절대 소외자, 프랑스 대통령 관저와 직통 전화로 연결되었던 철학자.(204쪽)

루마니아에서 그는 [눈물과 성자]라는 책을 펴냈는데, 당시 루마니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사람한테서는 "혼란과 무질서", 다른 비평가들한테서는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 후에 그는 프랑스에서 살면서 프랑스어로 글을 써서 자신의 조국에 복수한다. 그는 사르트르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았다. 그러나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절망의 끝에서]는 시오랑의 첫 작품이다. 그는 이 책으로 신예 작가들에게 주는 루마니아 왕립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젊은이다운 무모하고도 거칠지만 정열로 한껏 불꽃처럼 내뿜는 철학적 단상들. 악마의 웃음소리처럼 미칠 듯이 소리치는 절규! 허무와 절망과 고독의 끝까지 가 보는 용기! 그 끝에서 오히려 기쁨의 노래를 읊조리는 아이러니! 읽는 내내 그의 용기에 감탄하면서 울고야 말았다.

"나는 죽도록 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9쪽)

"고통 속에서의 서정은 피와 살과 신경의 노래이다."(12쪽)

"서정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오로지 피, 진지함, 불꽃이라는 데 있다."(12쪽)

"눈물이 뜨거운 것은 고독 속에서뿐이다."(14쪽)

"인간이 살 수 있는 것은 끝없는 긴장을 객관화하면서 진정시켜주는 글쓰기를 통해서뿐이다. 창조는 죽음의 마수로부터의 일시적인 구원이다."(15쪽)

"강한 광기가 숨어 있지 않은 존재함은 가치가 없다."(19쪽)

"나는 공허한 추상보다는 육체적인 격정이나 신경의 파탄에서 오는 성찰을 백배 더 원한다."(36쪽)

"삶이란, 삶과 죽음이 뒤섞인 고통의 연장이라고 느낄 때에만 죽음은 이해된다."(36쪽)

"이성 간에는 정신적인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하나가 되어, 그것이 내게 정신적이라는 환상을 주게 되는 물리적인 현상만이 존재한다. 그때야 비로소 자신이 녹아버리는 감정, 전율하는 온몸의 살이 더 이상 아무런 저항도 장애도 되지 않으며 스스로의 불로 타오르고 녹아버리고 사라져버리는 느낌이 솟아난다."(125쪽)

중간 중간에 사르트르의 철학과 비슷한 부분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또, 기독교에 대한 공격도 보인다. 이렇게 쓰고 있다. "기독교는 사랑을 모른다. 기독교가 알고 있는 것은 사랑 자체라기보다 사랑을 암시하는 관대함과 동정심뿐이다."(170쪽)

감정에 사로잡혀 비약이 심한 부분도 꽤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거칠 것 없이 저돌적으로 자신의 절망과 싸우는 젊은이의 감정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독과 절망과 고통을 감상적으로 흥얼거리는 이는 있어도 정면 대결하는 사람은 없다. 에밀 시오랑은 불면의 밤에 그것들을 똑바로 쳐다 볼 용기가 있었던 자다.

[태어난 불편함에 대해서]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책임감에서 벗어나려고 나는 책을 읽어댔다. 매일 수많은 시간을 아무거나 읽었다.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데 성공한 것을 제외한다면 확실한 이득은 없었다."(190쪽) 대학 3학년 2학기, 현재 나의 상태다. 도서관에 쌓인 수많은 책을 보면 신물이 난다. 저 쓰레기들을 읽으며 보냈던 나의 시간들, 도대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도 여전히 이렇게 책을 읽어 치우며 모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 어리석음.

오늘부터 나는 고독과 절망과 허무와 싸울 것이다. 더 이상 피하지 않을 것이다. 기꺼이 그것들을 끌어안고 살리라. 이제부터 그것들과 정면 대결에 돌입한다.

내 곁에는 에밀 시오랑이 있다. 불면의 밤에 불꽃처럼 깨어 있던 그가.

1997.12.15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챕터하우스 2013년

이렇게 재출간되었다. 제목이 너무 바뀌어서 못 알아 볼 뻔했다.

202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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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임철우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2년 발행

등대 아래서 휘파람
한양출판 펴냄
1993년 발행

외진 구석 도시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그 동안 문학 작품을 머리로만 읽으려고 노력했구나, 하고 문득 깨달았다. 지금까지 많은 시와 소설을 읽었지만,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한 작품은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글이 나의 머리만 뜨겁게 했지, 나의 가슴은 그대로 냉가슴이었다. 그래서 내가 읽은 것은 멋지고 그럴싸한 문장이었지, 글을 쓴 사람의 감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읽어 오던 내가 임철우의 이 소설은 만난 것은 행운이자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모처럼 가슴이 따뜻해졌다.

작가 나름대로의 문체가 다 각각의 매력이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체는 작가 임철우의 문장처럼 읽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특징을 지닌 그런 것들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서 작가 임철우는 참 편하게 아름답게 쉽게 썼다. 이 분의 전공이 영문학인데, 오히려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더 많은 듯하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잘 살렸으며 사투리 구사도 지나치지 않게 적당하다. 이 점이 다른 작가한테서 잘 볼 수 없었던 작가 임철우 문장의 특징이 아닐까.

이 작품의 한 문장을 인용해 본다. "꽤액꽤액 굉장한 비명을 질러 대면서 밤낮 없이 콩쾅콩쾅 요란스레 달려 지나치는 그 기차들 때문에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의성어가 반복되고, 꼭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4 3조나 4 4조로 진행된다. 읽는 맛이 절로 난다. 문학적으로 멋지게 꾸며 쓴 흔적이 없는 문장이라서, 글을 읽는 맛은 더욱 꿀맛이다.

인물을 묘사하는 문장 하나를 더 인용해 본다. "개떡처럼 울퉁불퉁한 머리통, 떠도 그만 감아도 그만인 작고 가느다란 실눈, 뭉툭 불거진 입술, 펑퍼짐하게 주저앉은 콧등, 누우런 앞니빨, 얼굴 전체에 좌르르 깔린 주근깨……" 임철우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흐르는 문장으로 작은 풍경과 평범한 이웃 사람들을 묘사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과 꿈을 이야기한다.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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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Gold (1995년)
아이작 아시모프
오멜라스(웅진) | 2008년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독자가 서스펜스 넘치는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급박하게 넘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125쪽.

계속 읽게 하는 비결이다.

"내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냐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못해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을 때까지 생각한다네." 137쪽.

소설 쉽게 쓰는 방법 따윈 없다. 원래 어렵다.

아시모프는 딱히 소설 창작법이나 작문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단다. 그럼에도 그렇게나 많은 소설을 홍수처럼 써낼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일까? 뭔가 비결이 있지 않을까? 정작 해주는 말은 상식 그 자체였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소설가는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이 있다. 세부사항과 사건 개요를 완벽하게 짜고 글을 쓰는 사람과 대충 두루뭉실하게 막연하게 생각하고 세부사항과 사건 진행을 생각해내는 사람. 

아시모프는 후자였다. 그의 말을 들어 보라. "지금 가지고 있는 건 사회적 배경, 위기, 해결책, 등장인물과 시작뿐이다. 그러면 내 소설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잘 짜인 이야기 구성에 들어가는 수많은 세부 사항들은 언제 결정하는가. 유감스럽지만 나는 글을 써가면서 세부 사항을 구성한다. ...... 첫 장면을 우선 쓴다. 그것이 끝날 때쯤엔 두 번째 장면이 떠오른다. 두 번째 장면의 결말에 이르면 세 번째 장면, 그런 식으로 95장 정도까지 가면 소설이 끝나게 된다." 140쪽.

어떻게 다작하면서 빨리 쓸 수 있는지는 알긴 했는데, 여전히 경이로워 보인다.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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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네 쪽으로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Du cote de chez Swann (1913년)
마르셀 프루스트
문예출판사 | 2011년


:: 읽기 어렵기로 악명 높은 문학작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읽어보려고 하지만 통독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작품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누구든 예외가 있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다 시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농담이 아니다. 진담이다.

이 유명한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읽어 본 것은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던 그해 한여름이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조용했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어슬렁 건물 안을 걸어다니다 한 구석에 자리한 책꽂이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집어다 먼지 탁탁 털어서 병실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쓰여진 검은 글씨를 읽었으나 한 쪽을 읽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잠이 쏟아졌다. 판결은 내려졌다. 이해가 불가능하고 졸린 책이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길고 지루하고 난해한 문장의 연속 속에 사건 진행이 그다지 없으니, 악명은 해마다 높아져 갈 뿐이다. 도서관에서 가장 대여가 안 되는 책이니 무인도에 갇혔는데 할 일이 없을 때조차 읽지 않을 책이니 별별 희안한 말들이 돌고 있다. 읽다가 화가 나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통독하거나 이해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책이다. 유명한 농담 반 진심 반으로 이런 게 있을 정도다. "나는 프랑스 문학 박사입니다. 프루스트를 읽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문학이라는 영토에 들어서는 순간 보지 않을 수 없는 건축물이다. 산처럼 거대한 소설을 어쩐단 말인가. 못 본 척하거나 무시할 수도 있겠지. 문학 작품을 읽을지 말지, 읽다 말지, 읽고서는 욕을 할지, 읽고서는 질투나 감동에 사로잡혀 며칠 몇 달간 음식조차 못 먹을 지경이 될지는 당신 몫이다.


::김인환 번역, 가장 읽기 편함

번역본이 많이 나와 있는데, 그중에 김인환의 문예출판사 책이 가장 편하게 읽혔다.

처음에는 전 권이 번역된 민희식의 동서문화사 판을 읽었다. 그해 여름 독서 체험이 반복되었다. 하루에 한 쪽을 읽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빨리 많이 읽어가기가 어려웠다. 한 문단이 한 쪽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한 문장조차 기나길었다. 읽고나서는 더 해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생각하는 시간이 읽는 시간보다 많았다.

1권 1부 전반부까지 읽고는 포기할까 말까 망설이던 중, 김인환 번역본이 전자책으로 나와있어 휴대폰에 받아놓고 지하철로 이동할 때 무심코 읽어나아가는데, 이게 웬일인가 읽기를 멈추지 못할 지경이 빠르게 읽히며 이해를 하면서 감상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미 어느 정도 내용을 안 상태에서는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술술 읽혔던 것이다. 게다가 김인환 문예출판사 번역본은 주석을 각주나 미주가 아니라 본문 글 중 가로 안에 처리했다. 그래서 시선이 왔다갔다 하지 않으니 읽는 흐름을 유지했다.


:: 경이로운 문장, 문장 표현의 최대치

마침내 1권을 통독했다. 프루스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문장이 묘사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를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쓸 수 있어. 혼자서 중얼거렸다. 별다른 내용이 없으면서 이토록 문장은 최고 수준이라니. 읽는 이에게 경의로움을 선사한다.

전 7권을 다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 이 1권만 읽어도 이 대단한 문학작품의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다. 부디 포기하지 말고 완독하길 바란다.

읽는 시간을 잊으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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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통신 1931-1935 Mortals and Others
버트런드 러셀 | 사회평론 | 2011년

버트런드 러셀이 쓴 글이라서 곧바로 샀다. 책이 도착해서 보니, 우와 정말 두껍다. 500여 쪽이다. 만족감 충만!

이 책은 러셀이 1931년부터 1935년까지 신문에 기고한 글 모음이다. 한글판 편집자가 붙인 부제 '젋은 지성을 깨우는 짧은 지혜의 편지들'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은유로서 '편지'라고 표현한 것 같다.

칼럼이다 보니, 글 하나하나는 짧다. 인쇄된 글씨가 크다. 줄간격이 넓다. 시원시원하게 읽힌다. 날마다 한두 편씩 부담 없이 읽었다.

러셀의 본래 문장은 기나긴 장문이다. 여유롭고 풍부한 사색을 즐겼던 그였기에, 단문으로 따따닥 빠르게 결론을 확정하는 방식을 싫어했다. 이 책의 원서와 번역본의 짧은 문장은 오늘날 우리 입맛에 맞게 편집한 것이다.

칼럼이 종종 그렇듯,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고 이 사실 저 사실 이 생각 저 생각 짜깁한 글이 적지 않다. 글 쓸 당시 시공간 배경을 잘 알 수 없어 글 자체만으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 없진 않았다. 몇 군데 주석을 달아주긴 했다.

러셀은 문평 비판적 시각에서 재치와 유머로 통찰을 보여준다. 그의 통찰은 오늘 우리 현실까지도 꿰뚫고 있다. 자살 허용, 교육 현장에서의 체벌 금지,안락사,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평등의 문제 등 오늘자 신문 칼럼을 읽는 기분이다.

이 책은 완역판이 아니다. 일부 글을 번역하지 않았다. 편집자 말로는 시대에 맞지 않거나 한국의 현실과는 너무 다른 글 몇 편은 덜어냈단다.

각 글의 제목을 종종 의역해 놓았다. 가끔 너무 생뚱맞다. 원문 제목을 같이 표기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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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
에라스무스 지음, 차기태 옮김/필맥

한글 세대를 위한 번역본 

한문보다는 한글에 익숙한 세대에게 편한 번역본이다. 다만, 한스 홀바인의 삽화는 넣으려면 제대로 넣든가 하지. 실망했다. 아예 삽화를 다 빼 버리는 게 낫겠다. 그리고 어차피 이해도 잘 안 되고 낯설기만 한데 주석도 다 빼 버리고 본문만 간결하게 남기면 좋았겠다 싶다.

여러 번역본 중에 가장 잘 읽혔다. 교수 번역자들의 한문투 번역 문장에서 벗어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2015.1.20

우신예찬 - 열린책들 세계문학 182
에라스무스, 김남우/열린책들

풍자를 허용해야 건전한 사회

열린책들에서 펴낸 책에는 부록으로 에라스무스가 주변 사람들에 보낸 편지글이 있다. 읽어 보니, 의외로 에라스무스는 심심풀이 책 '우신예찬'을 나름대로 변호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냐는 식으로 전제를 세운 후 풍자를 어느 정도 허용해야 건전한 사회라는 투였다.

책은 저자의 의도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대로 읽힌다. 건전한 반성 정도를 기대했으나 전면적인 사회 개혁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종교 정치 지배층의 억압과 위선에 시달렸던 사람들의 양심에 사이렌을 울려 버렸다. 가볍게 다들 한 번 웃자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말했던 진실이 너무나도 뜨거웠다. 풍자의 힘이 센 이유는 웃음으로 진실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2011.9.21

우신예찬
에라스무스, 김남우/열린책들

해마다 읽는 책

어떤 책은 반복해서 읽는다. 대표적인 게 수험서다. 수험서의 운명은 한심한 인생과 똑같다. 반복해서 읽지만, 시험이 끝나면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다. 딴 사람한테 팔아 버리거나 쓰레기통으로 간다. 어떤 사람의 삶은 그렇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가 그렇게 가는 거다. 고전은 반복해서 읽히지만, 수험서와는 정반대의 운명이다. 계속 읽어도 언제나 새롭다. 인생은 이래야 한다.

에라스무스는 꽤 많은 책을 썼다. 하지만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한테 읽히는 책은 달랑 [광우예찬] 한 권이다. 그것도 심심풀이로 별 생각없이 썼다. 작가라면 자신이 가장 노력해서 쓴 책이 많이 읽히길 바란다. 하지만 책의 운명은 작가의 노력과는 상관없다. 그가 공들여 쓴 책은 현재 거의 읽히지 않는다.

이 책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는 게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정도 풍자에 당시 사람들이 흥분했다면 당시 종교 단체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정도로 짐작할 뿐이다.

에라스무스의 이 책을 네 번 읽었다. 해마다 읽었다.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왜 이렇게 읽을까. 이유는 뭘까. 아직도 바보들이 이 세상에서 설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친 놈들이 판 벌리고 지랄발광하고 있는 중이다.

2004.7.21

광우예찬.군주론.방법서설.잠언과 성찰
에라스무스 외 지음/을유문화사

풍자 문학의 진수
인간의 광우에 대한 넉살
그리스로마 고전, 성경, 구절의 종횡무진

세상을 바꾼 우스개

세로쓰기 책을 가로쓰기 책으로 읽으니까, 빨리 읽힌다. 느긋하게, 주석도 종종 읽었다. 세로쓰기에 절판의 운명을 겪었던 책이 가로쓰기에 새판으로 나왔다. 다행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에라스무스의 [광우예찬], 우리한테는 학생시절 세계사 시간 [우신예찬]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듯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은 드물다.

고전이 읽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옛날 책은 재미없다고 미리 판단하는 건 잘못이다. 책을 읽기도 전에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건, 음식 맛을 보기 전에 맛이 없다고 말하는 거와 같다.

[광우예찬]은 재미있다. 지금껏 세 번 읽었다. 앞으로도 시간이 나면 또 읽을 작정이다. 이 책은 개그 콘서트보다 정확히 백배 더 웃긴다. 에라스무스의 수다는 수다맨을 오천배 앞지른다.

광우여신이 스스로를 예찬하면서, 인간의 바보 멍청 지랄 개판 짓거리를 줄줄이 꿰어서 늘어놓으며 웃긴다. 글쓴이 에라스무스의 익살은 자신의 책 [격언집]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까지 풍자하면서 끊없는 수다를 이어간다.

그는 이 풍자문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쓴 진지하고 교훈적인 책들에 비하면, 이 책은 심심풀이였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게 있었다. 부패 종교 권력에 대한 매서운 비판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이 그 당시 베스트셀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래서다. 사람들은 억압된 자신의 감정을 속시원하게 풀어준 이 책에 열광했다.

당시 종교 단체들은 성경 구절을 자기 이익에 맞게 뜯어고쳐 함부러 사람들을 사형시켰다. 그런 시대에 감히 그건 미친지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에라스무스가 처음이었다. 이 심심풀이 책은 그 시대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어 퍼진다. 우스개가 세상을 바꾼다.

밑줄 긋기

모든 것을 먹줄로 재고, 어떠한 잘못도 용서하지 않고, 자기에게만 만족하고, 자기만이 부와 건강을 지니고 있고, 자기만이 임금이고, 자기만이 자유롭고, 천하에 유아 독존이라고 자칭하고, 친구도 필요치 않고, 어느 누구의 친구도 아니고, 신들에 대해서도 업신여기고, 인간의 행위를 모조리 어리석다고 생각하여 그것에 대해서 비난과 조롱밖에 퍼붓지 않는 그런 따위의 인간을 보았을 때, 누가 그를 괴물처럼, 유령처럼 무서워서 달아나지 않겠어요. 이러하기에 완벽한 현인이란 짐승 같은 거예요. (66쪽)

2002.8.15

글쓴이: 에라스무스 Erasmus
옮긴이: 정기수
펴낸곳: 을유문화사
발행일: 1989년 11월 25일
 
풍자 문학의 진수
인간의 광우에 대한 넉살

인간의 바보 미친 지랄을 찬양하라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전기문, [에라스무스 - 위대한 인문주의자의 승리와 비극]을 읽고, 에라스무스의 책이 보고 싶었다. 서울문고에 갔다가 영어 원서 펭귄 클래식 [Praise of Folly]를 발견했다. 그것도 세일 코너에서! 덕분에, 싸게 샀다. 하지만, 내가 워낙 게으르고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 생소한 단어와 온갖 주석이 달린 그 책을 영어로 읽자니 만만치 않았다. 앞 부분 조금 읽다가 그만 두었다. 그게 1년 전이다.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언제쯤 읽게 될지는 저 위에 계신 분도 모른다.

송파 도서관에서 에라스무스를 검색해 보니, [광우예찬]이 나왔다. 서가로 들어가서 책을 찾아냈다. 책을 펴는 순간, 읽어야 할지 망설였다. 세로쓰기였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 보니, 새로 가로쓰기 책이 나와 있었다. 종이가 누렇게 바랜 세로쓰기 책을 읽기로 했다. 읽다가 말다가 읽다가 자다가 거의 2주일이 걸려서야 다 읽었다. 머리 속에 남은 게 있나. 그래도 밑줄 두 개 그었다.

중학교 이상 교육을 받은 한국 사람들이라면, 에라스무스를 세계사 시간에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 정도로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에라스무스는 고전 연구 학자였다. 그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라틴어로 쓰여진 옛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섭렵한 박학 다식한 사람이었다. [광우예찬]에서 종횡무진 쏟아져 나오는 인용문구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헌과 성경이다.

에라스무스는 이 책을 진지하게 쓴 게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여행을 하면서 그 동안 내내 말을 걸터타고 있어야만 했던(25쪽)" 그는, 장난삼아 광우신(狂愚神)을 예찬하는 글을 쓴다. 그냥 심심해서 쓴 거다. 그는 이 책이 종교 개혁의 불씨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심심풀이로 쓴 책이 세상을 바꾸다니, 우습지 않은가.

[광우예찬]은 나오자마자 그 시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부패한 종교 권력 세력들의 짓거리에 대한 풍자가 그 시대 사람들의 속을 풀어 주었다. 그럼에도, 이 책의 풍자 대상은 포괄적이다. 신학자, 문필가, 남편, 노름꾼, 사냥꾼, 국왕, 추기경, 수도사, 신하, 법률가, 철학자, 교황 등. 시작할 때는 농담만 하다가 독일 주교들과 신부들을 풍자할 때는 진담을 말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이 책은 기존 기득권 세력한테 금서로 묶인다.

에라스무스가 쓴 책들 중에 지금까지도 읽히는 건 이 책뿐이다. 나머지 책은 잊혀졌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이 책만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서양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과 성경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추거나 일일이 주석을 읽어야한다. 반면, 에라스무스가 그랬듯 심심해서,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라면 광우신의 유쾌한 자화자찬을 그런 배경 지식과 주석의 도움이 없이도 즐길 수 있다.

풍자문의 생명은 꽤나 긴 것 같다. 인간들의 바보 미치광이 짓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으니.

밑줄 긋기

어떠한 종류의 인생도 제외하지 않는 풍자는 어떠한 특정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악덕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일어나서 상처를 입었다고 외친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죄가 있음을 인정하는 까닭이요,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불안감을 자백하는 까닭일세.(27쪽)

행복이란 사물에 관해 인간이 갖는 의견에 따라서 좌우되는 거예요.(87쪽)

200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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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 지음
이승은 옮김/열린책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은 유명한 유령소설이다. 니콜 키드먼 주연 영화 '디 아더스'가 이 이야기의 틀거리를 가져다 썼다. 유령 이야기를 좋아하거나 쓰는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작품이라서, 나는 헨리 제임스의 그 많은 소설들 중에 유일하게 이 소설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사의 회전. 제목이 특이하지 않은가. 언젠가 읽어야지 했는데, 때마침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자책에 있길래 냉큼 읽었다.

유령 이야기로는 내가 읽은 소설들 중에 가장 심심했다. 정말 정말 무섭다고 이야기에서 여러 번 강조한다. "지금까지 저 말고는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야기일 겁니다. 정말 너무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나는 정말 정말 하나도 안 무서웠다. 읽다가 졸려서 잤다. 사건 전개보다는 등장인물의 의식을 표현하는 데 치중하는, 작가 특유의 작풍 때문이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의식을 모호하게 표현한다. 정말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불확실하다. 등장인물이 유령을 봤다고 하지만 정말 본 것인지 그냥 자기만의 착각인지 알 수 없다. 이야기를 하는 자를 신뢰할 수 없다. 이야기는 명확하지 못하게 되지만 해석의 가능성은 다양해진다.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려는 듯 보이지만 글에서는 구멍이 숭숭 뚫린 치즈 조각처럼 의심스러운 문장이 많다. 읽다 보면, 도대체가 믿음이 안 간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었어도, 당신은 남자 아이 마일스가 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뭔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다. 죽었다는 남녀 두 사람의 나쁜 짓도 명확히 알 수 없다. 둘이 성교를 했다는 암시가 있다. 어떻게 왜 죽었는지도 당최 알 수가 없다.

제임스의 소설은 죄다 이런 식이다.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고 모호하게 이야기해서 기묘한 효과를 거둔다. 그 효과를 애써 맛보지 않고 단호하게 해석하는 이들도 있을리라. 그런 이들한테는 '죽은 하인들의 유령이 두 아이의 영혼을 사로잡으려는 이야기'로 명쾌하게 정리되리라. 

애써 작가의 의도대로 해석해 보자면, 유령의 목격자가 겪는 불안한 의식을 느껴 공포감에 사로잡혀야 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고 내내 불만만 쌓였다.

유령 자체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더 무서운 법이다. 나사처럼 계속 특정 생각에 사로잡혀 깊게 파고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런 나사가 이 이야기에는 두 개나 있다.

첫째, 타인의 말. 

내(가정 교사)가 유령을 정말 본 것인지 믿을 수 없지만 두 아이도 봤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유령이 있는 것이다. 

둘째, 집단 의식. 

사회적 압력으로 그렇게 믿도록 하는 것. "인간의 도덕이라는 나사를 한 번 조이기를 요구하는 압력"인 것이다. 자신(가정 교사)은 절대 선이며 죽은 하인 둘을 일방적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붙이고 절대 악으로 규정한다.

나의 생각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정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이 소설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유령'이 아니라 특정 생각으로 조정되는 '의식'이다. 

나 스스로 나를 기만하며 허위 의식 속에서 위선과 허구의 삶을 사는 것이다. 유령처럼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나사의 회전'은 무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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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원유경 옮김/열린책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을 때면 언제나 뒤가 비치는 습자지를 보는 느낌이 든다. 저렇게 말하는 캐릭터 뒤에 작가의 육성. 이렇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차분하게 내는 수필 같은 문장들.

부유하고 행운이 가득한 삶 속에서 우아하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불행하고 가난한 삶을 사는 중에 자신감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끝장난 결혼과 경제적 곤란 속에서 세련된 인품을 유지하는 여성을, '오만과 편견'에 쓰인 문장에서 볼 수 있다.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제인 오스틴'을 읽을 수 있다.

연애와 결혼을 대단히 현실적으로 실질적으로 다루면서도 그 과정과 결말은 낭만적으로, 혹은 로맨스장르 소설의 규칙을 충실하게 따른다. 결혼했다로 끝난다. 그 후로 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을 거라고 암시한다.

전반적으로 번역이 나쁘진 않지만, 아주 좋다고 할 수도 없었다.

YOU를 당신으로 고지식하게 직역한 건 거슬린다. 다른 말은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최대한 바꿨으면서 유독 YOU만은 당신으로 꼬박꼬박 옮긴 이유를 모르겠다.

하나 더. 영어의 어순을 고지식하게 옮기다 보니 우리말 어순을 지키지 못해 오류가 났다. "나의 결혼에 대한 생각." 수식어는 피수식어 바로 앞에 두던지 쉼표를 이용해서 독자의 혼동을 피해야 한다. "결혼에 대한 나의 생각" 또는 "나의, 결혼에 대한 생각"으로 써야 맞다.

인간을 개미 보듯 관찰하며 글을 쓰는 사람은 고독한 게 아니라 고집스러운 것이다. 인간에 대해 실망한 사람은 대체로 인간 외의 것에서 위안을 찾는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을 인간이 아닌 관찰 대상자로 바꾼다. "엘리자베스는 그 상황에 눌리지 않고 차분하게 자기 앞의 세 여성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제인 오스틴은 성공적인 결혼은커녕 경제적인 독립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다. 갖지 못한 것,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을까. 현실은 시궁창이었으나 소설은 궁전이었다. 작가는 소설에서 연애와 결혼에 모두 성공한 주인공을 그려낸다. 자신이 원하는 환상 속 나라로 들어간다.

"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이라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 이 첫 문장은 소설 전체를 요약하고 대변한다. 그리고 할리퀸 로맨스소설의 법칙이기도 하다.

키 크고 잘생겼으며 부자에다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젊은 미혼 남성이 가난하지만 독립심이 있으면서 착한 성품에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운다는, 밝은 성격의 미혼 여성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

이 결혼은 말 그대로 소설이며 환상이자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로또 복권 1등 당첨이 연속으로 세 번 일어나거나 같은 장소에서 벼락을 두 번 맞는 것만큼이나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런 결혼은 여성의 가장 절실한 욕망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의 가장 손쉽고 빠른 신분 상승 및 부의 획득은 결혼이다. 문제는 그런 일은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이며, 웬만해서는 절대로 이 판타지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상은 자유다. 게다가 공짜다.

세계문학고전으로 불리며 계속 읽히고 연구되는 소설 중에는 그다지 납득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제인 오스틴의 소설도 그중 하나다. 사실주의 어쩌니 여성의 목소리니 사회소설이니 하면서 애써 훌륭한 작품이니 대단한 소설이니 떠들어대지만 그래봤자 요즘 흔히 보는 할리퀸 칙릿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않는가.

최신 여성지의 한쪽에 실린 연애 충고 칼럼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드는, 옛날 소설이라니. 연애와 결혼 문제는 과학기술과 달리 거의 발달하지 못한 모양이다. 연애고 결혼이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요즘이라도 말이다. 사랑은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비논리적인 환상이면서 구차스러운 현실에 빠져 죽지 않도록 해준다. 상상이라도 해도 감정은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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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 1, 2
존 스타인벡 지음
정회성 옮김
민음사


이 작품은 대학생 시절 영미문학 관련 수업 시간에서 영어교육과 학생한테서 처음 들었다. 성서를 모티브로 한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 학생도 그 정도밖에는 얘길 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 학생, 정말 이 책을 읽었는지 의문스럽다. 해설만 읽은 것 같다.

원죄, 성서, 영미 고전 따위의 화장을 지우면 이 작품은 텔레비전 미니 시리즈만큼 재미있다.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두 가문의 사람들이 펼치는 여러 인생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사람들을 선과 악으로 유치하게 갈라놓고 온갖 자질구레한 복수심, 수치심, 욕망, 죄의식을 뒤엉켜 놓으며 이야기를 꾸려 나아간다.

스타인벡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두 가문의 사람들을 서로 교묘하게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비행기와 자동차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묘사해서 독자를 웃기고, 트래스크 가문의 세대를 거치며 반복되는 형과 아우의 대결 구조로 독자를 긴장시키고, 캐시의 음모로 재미를 돋구며, 새뮤얼 해밀턴 가문의 이야기로 삶의 밝은 면으로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이야기의 중심은 트래스크 가문의 캐시와 애덤이다. 하지만, 난 중심보다 주변에서 내 모습을 더 많이 보았다. 특히, 톰의 모습에서 그랬다. 아론의 결벽증과 대학 생활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소설은 소설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나는 톰처럼 장엄하게 자살하지 못했다. 아론처럼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나의 생각대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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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볼테르 지음, 윤미기 옮김
한울(한울아카데미)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054

캉디드(부제 낙관주의)는 볼테르의 대표작으로 풍자소설이다. 수능이네, 고전이네, 철학소설이네 해서 어렵고 재미없을 거라 짐작하기 쉬운데, 읽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재미있게 읽힌다.

18세기 유럽이나 21세기 지금이나 세상은 크게 바뀐 것 같지 않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조리와 불합리를 고발하는 산문 정신은 시대를 초월하며 계속 읽힌다.

이 소설을 다 읽자마자 팝콘처럼 펑 생각나는 소설가가 있었다. 커트 보네거트. 소설 속 인물들은 온갖 별별 구질구질한 일을 당하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할 의지가 없고 노력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 부조리와 전쟁과 불행이 요지경 속 무늬처럼 펼쳐지고, 거기에 휘말려든 주인공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런 인물을 보는 독자는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정말 삶이란 게 참 쉽지 않다는 사실을 공감한다.

커트 보네거트가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은 건 참 심심하고도 시시하게도 상식이다. 공중 도덕을 지키고 서로 사랑하고 전쟁 일으키는 사람을 경멸하라. 볼테르도 비슷한 답을 내놓는다. 세상이 아무리 불합리하여 지옥처럼 느껴질지라도 자기 일을 충실히 하며 최선을 다해 살라.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 봐라. 볼테르가 이 소설을 쓰던 때와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가. 종교는 오만, 정치는 개판, 경제는 깽판, 사법은 한심, 행정은 바보. 돈과 권력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삶을 마감하는 게 도대체 제대로 된 삶인가. 우리는 더 나은 행동으로 이 세상을 개선할 순 없을까.

희망은 어리석은 행위다. 캉디드처럼 세상이 아무리 그래도 나는 착하게 살겠다는 믿음 말이다. 그럼에도, 비관에 빠져 있기보다는 희망을 갖고 뭐든 하는 게 낫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기 직전까지 이것저것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걸 보라. 빌린 닭값을 갚으려 한다. 심지어 피리 연주에 힘쓴다. 한 곡조 배우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면서.

비관주의와 허무주의의 밑바닥에서 우리는 삶의 최고 긍정을 발견한다. 캉디드가 그랬듯,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가꾸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암흑으로 가득하더라도 촛불을 켜고 앞으로 가야 한다. 내일 죽더라고 오늘 뭔가를 하자. 좋은 일을 하자. 나에게, 남에게, 또 그 누구에게 사랑으로 기쁨으로 무엇이든 해 주자. 보잘것없어도 좋다. 실패해도 좋다. 아무 소용이 없어도 좋다. 아무런 성과가 없어도 좋다. 선을 행하자.

한울에서 나온 책으로 처음 읽었고 열린책들 전자책으로 두 번째로 읽었다. 요즘 가뭄에 메르스에 표절에 대한민국 난장판인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나마 현실이 이 소설의 부조리보다는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세상이 아무리 지옥 같아도 옛날보다는 살기 좋다. 그리고 어떤 최악의 상황이라도 희망을 갖고 바르게 살려는 시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

한울의 윤미기 번역본을 추천한다. 안에 간략한 그림도 있다. 열린책들의 이봉지 번역은 한글 세대들한테 낯선 한자어를 종종 썼다.

2015.6.20


천일야화의 영향이 큰 듯. 특히, 16장. 걸리버 여행기의 영향도 있는 듯.

진정한 이성적 합리주의란 뭘까. 볼테르는 극단적인 이성주의를 가볍게 비웃으면서 그런 극단적 광기에 사로잡혀 살며 부조리한 일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특히, 라이프니츠와 예수회를 싫어했다. 미친 년놈들 취급했다.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인가? 세상은 완벽한 곳인가? 미친 세상에는 미친 사람이 제정신 취급을 받는다.

20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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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기계발 필독서 50 
톰 버틀러 보던 | 센시오 | 2024년 2월
★★★★★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
흐름출판 | 절판 | 아래 쪽수 표시는 이 책이다.

자기계발에서 자아인식으로

수많은 자기계발서 중에 과연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연하다면, [세계 자기계발 필독서 50 /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을 읽어 보라. 무턱 대고 이것저것 읽을 것이 아니라 추천 목록과 서평의 도움을 받아 읽는 것이 순리다. 50권에는 시대를 초월한 고전과 최근 베스트셀러가 자기계발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 묶여 있다.

책 제목만 보고 가벼운 책으로 짐작하지 말고 목차를 살펴 보라. 가장 처음 소개하는 책은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이지만 마지막 서평 도서는 피에르 테아르 드 샤르댕의 ‘인간현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자기계발을 주제로 한 책 소개로 보이나, 안으로 들어가 세부를 살피면 삶의 통찰과 자아인식을 종합했다.

여러 책을 탐색하는데 그 분야는 철학, 종교, 문학, 경제, 예술, 심리학 등을 물론이고 동서양의 고전을 포괄한다. 법구경, 도덕경, 바가바드 기타에 성경까지 등장한다.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담겼다면 그 어떤 책이라도 기꺼이 파고들어갔다.

처음에는 가볍게 술술 재미있게 읽히는데 뒤로 갈수록 묵직한 주제와 낯선 책이 기다리고 있어서 통독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있는가 하면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도 있다. 서평가는 책의 수준이 아니라 주제에 주목했다.

진정한 삶이란? 무엇이 행복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이런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써내려갔던 이들의 책을 깊게 읽고 핵심을 짚어냈다. 글쓴이의 성실한 책읽기는 성지 순례처럼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노력과 정성이 글 한 줄 한 줄에 보인다. 그 어떤 책에도 편견을 갖지 않는 수용적 자세와 더불어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다.

흔히들 성공이란 건강, 부, 사랑, 행복, 명예 등을 뜻한다. 자기계발로 그것을 얻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들 여긴다. 지은이는 그런 책을 소개하면서 그 너머를 펼쳐 보여준다. 버틀러 보던은 사람들이 바라는 그 모든 것을 소유했다가 한순간에 모두 잃게 될 처지에 있는 보에티우스가 죽기 직전에 감옥에서 쓴 '철학의 위안'을 “자기계발 영역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아무리 높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309쪽)고 평한다.

자기계발서는 말한다. “망설이지 말고 당장 해 봐라.” 그런데 사람들은 방금 읽은 대로 하지 않는다. 이를 거듭 경험한 사람에게는 ‘자기계발’이란 단어만 봐도 화가 난다. 그런 류의 책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그럼에도 삶이 힘들면 어김없이 자기계발서를 펴서 읽는다. 왜 그런가?

꿈을 이루기에는 현실이 녹녹치 않다. 책을 읽을 때 다잡았던 긍정적 사고는 짜증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로부터 들을 실망스러운 말과 그들이 저지르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금세 잊힌다. 내면의 힘이 무쇠처럼 강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대체로들 그저 그리 된다.

당장의 욕망을 해소하지 못하니 현실은 언제나 불안하고 불만이다. 생계유지를 위해서 하고 싶지 않을 일을 하는 데 하루의 대부분을 쓰니 성취하고 싶은 일의 실행은 계속 미룬다. 자기계발은 꿈으로만 머문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 “참아라.” 책에는 이런 말이 안 나온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성공은 운만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며 단지 노력으로만 되는 것도 아님을 냉정하게 깨닫는다면, 위선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자아의 진정한 소망을 인식할 수 있으리라. 당신이 바라는 성공은 운과 노력이 필요하나 간절한 바람은 깨달음을 요구한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잘할 수 있나? 그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나? 그런 의문에 답한 후에야 진정한 자기계발이 시작된다. 자기계발은 자아인식을 핵으로 감싸서 안을 때야 비로소 실천이 가능하다. 이 책은 ‘자기계발’로 출발해서 ‘자기인식’에서 멈춘다. “당신만의 독특함을 인식하고 표현함으로써 세상의 진화를 일으킨다.”(465쪽)

자기계발의 목표는 인간 잠재력의 발현이다. 진정한 삶은 행복과 성공을 초월한다. 자아실현은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다. 자신과 세상을 알아가는 배움의 길에는 실패도 끝도 없다. 오직 정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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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인물 묘사의 악마적 탁월함

중학생 때 이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그때는 정말 지겨웠다. 무슨 사람들이 나와서 조잘조잘 수다만 떨고 뭘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거다. 고작 뭘 한다는 게 춤추거나 독서, 산책, 혹은 카드놀이라니. 그땐 정말 재미없었다.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넘으면 이 책은 어릴 적과는 다르게 읽힌다.

제인 오스틴의 연애소설은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세상의 슬픔과 절망을 배제한다. 전쟁도 죽음도 질병도 실업도 가난도 없다. 특별한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고작 날씨다. 비가 와요. 사람들은 춤추고 밥먹고 카드놀이를 하며 산책하고 편지를 쓴다.

이 소설은 초고가 있었는데 그 제목은 '첫인상'이었고 서간체 소설이었다. 완성된 원고에 편지가 자주 나오는 건 그래서고 첫인상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짐작이지만 초고는 집안 반대로 결혼이 무산된 상태의 감정이 넘치는 상태에서 썼을 것이고 개고를 거듭하면서 과도한 감정은 제거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놀랍고도 불편했던 점은, 남자의 돈과 여자의 외모를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선언/농담/격언 같은 첫문장이라니. "부유한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시공사 9쪽)

다시 읽어 보니, "제가 원하는 진정한 찬사는 저를 진실된 사람으로 보아주는 것이에요."(시공사 139쪽) 이런 대사도 있다. 역시 명작이다.

작가가 모든 등장인물에게 공평하다는 점도 주목되는 특징이다. 그 어떤 연애소설에서도 보기 힘든 이야기 기술이다.

이 소설이 유쾌한 것은 단지 해피엔딩이라서가 아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자기 성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행복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장단점이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으면서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는 점이 유쾌한 것이다.

"저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의 판단이 어떠하든 개의치 않고, 제 판단에 따라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대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을 뿐입니다." (펭귄클래식코리아 특별판 466쪽)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천한 것이 감히 내 조카랑 결혼하려 든다며 요즘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온갖 모욕을 퍼붓는 부잣집 나이든 여인에게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이 당당하고 확고하게 하는 말이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지 않았을까.

인간의 약점을 비웃으면서도 냉소적이진 않다. 이 점이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다. 다른 풍자소설은 불편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풍자소설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은 단연 콜린스다. 그는 웃기는 데 천하무적 캐릭터다. 다아시 따윈 상대도 안 된다. 

이 작품은 좀 답답한 구석이 있다. 작가는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거나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군대가 언급되는데, 제복 얘기만 반복할 뿐이다. 전쟁 같은 사회적 불안은 되도록 자세한 언급을 자제한다. 한사상속을 여러 번 외치기만 할 뿐 남녀평등을 주장하진 않는다. 남녀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을 언급하지만 감히 그 질서를 전복하겠다는 말은 삼간다.

우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청혼을 거절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남다른 듯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작가의 결혼 실패와 겹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돈이냐 사랑이냐의 문제는 표면적인 문제이고 사랑이든 결혼이든 자기 소망대로 이룰 수 없었던 것은 슬픈 일이니까.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인물묘사는 악마적인 탁월함이 있다. 그 어떤 소설에서 이토록 간결하고 명확하게 사람을 조각해낸 문장을 읽어본 적이 없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듯한 생생함과 옆집 아줌마의 수다를 듣는 듯한 편안함과 클래식 음악을 듣는 듯한 고상함이 마법의 황금 비율로 섞인 글이다.

"키티와 리디아는 그 사람(위컴)의 변심을 저(엘리자베스)보다 더 슬퍼하고 있답니다. 아직 어려 세상의 이치를 모르니, 못생긴 청년이든 잘생긴 청년이든 먹고살 것은 있어야 한다는 굴욕적인 깨달음을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이죠."(펭귄클래식코리아 특별판 205쪽)

'오만과 편견'이 연애소설 결혼 판타지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문장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결혼에 대한 환상에만 매달리거나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넣어서, 오히려 소설이라기보다는 처세술로 보일 정도다. 제인 오스틴은 소설에서 계속 돈 얘기를 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내가 정말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보다도 적어. 나는 세상에 대해 알수록 세상이 점점 싫어져. 사람들은 모두 모순투성이고 겉으로 드러난 장점이나 양식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내 믿음을 날마다 확인하고 있으니까."(펭귄클래식코리아 특별판 185쪽)

작가 제인 오스틴이 자신의 결혼이 무산되고 독신으로 지냈어야 했던 이유를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를 통해 항변하듯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에서 리지의 언니인 제인을 통해 인식의 균형을 잡아 다시 생각을 정리하는 걸 보면, 왜 이 소설이 고전이 되었으며 왜 연애소설의 차원을 넘고 있는지 보여준다. 제인이라는 이름은 영어권 사회에서 흔하지만 작가와 등장인물의 이름이 같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다지 잘난 게 없지만 나름 착하고 성실하고 똑똑하고 그냥저냥 못생기진 않은 여자가 키 크고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다. 이 한 문장은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로맨스 소설의 뼈대를 말해준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이후 불멸의 플롯이다.

'오만과 편견' 영상물은 1995년 BBC 드라마와 2005년 영화가 유명한데, 나는 드라마 쪽이 좋다. 제인은 영화 쪽이 마음에 들고 엘리자베스는 드라마 쪽이 마음에 든다.

오만과 편격 각 번역본의 특징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민음사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원유경 옮김/열린책들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고정아 옮김/시공사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김정아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오만과 편견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제인 오스틴 지음, 김유미 옮김/더클래식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선 옮김/현대문학

세계문학전집 작품 중에 가장 인기가 있을 게 분명한 <오만과 편견>은,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 중에 가장 쉽고 편하고도 빠르게 재미있게 읽힌다. 남자가 번역한 건 피하라. 너무 점잖다. 어찌나 갑갑한지.

시공사 고정아의 번역은 간결하면서도 베넷 부인의 오도방정을 잘 살렸다. 참고로, 이 책에는 버지니아 울프가 제인 오스틴에 대해 평한 글을 부록으로 실었다. 분홍빛 표지가 예뻐서 많이들 사기도 한다.

펭귄클래식코리아 김정아의 번역은 합쇼체를 주로 하되 간간히 해요체를 섞어서 화자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식이다. 이는 간결하게 '다'로 끝나는 문장으로 번역한 대다수와 확연히 다르다. 화자를 되도록 인식하지 않고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더클래식은 가격이 싸서 번역이 좋지 못할 거라 의심하기 쉬운데,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열린책들 번역은 무난해서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히는 책은 민음사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재산깨나? :-) 감정을 넣어서 단어를 넣었다. 이런 문장이 잘 읽히고 이해도 잘 되는 편이다. 

최근에 나온 현대문학 판은 삽화가 있는 게 특징이다.


번역 비교 평가

'오만과 편견'을 원문으로 읽으니 만만치 않다. 번역본 네 개랑 같이 봐도 인터넷 검색을 해도 도저히 for a kingdom! 이 숙어 뜻을 '정확히' 모르겠다. 열린책들 번역문(정말이지!)을 보면 대략 짐작은 가지만. 사전에 안 나온다.

번역에 정답은 없다. 선호가 있을 뿐. 때론 생략이나 첨가 혹은 변형도 필요하다. 단어 선택에 직면하면 번역자의 취향과 경험에 좌우될 것이다.

딱 한 문장만 봐도 번역이 제각각이다.

I quite detest the man.
그 남자 정말 싫어요. - 열린책들
정말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었어요! - 시공사 고정아!
나는 그 남자가 정말 싫어요. - 펭귄클래식코리아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남자예요. - 더클래식

고정아 번역은 참 뭐라 해야 하나. 이건 뭐 원문을 능가해버리니. 번역은 그만하고 어서 소설 쓰세요. 언어 구사력이 이 정도면 번역에 자기 재능을 낭비하는 거다.

전반적인 느낌으론 이렇다.

시공사 : 고정아는 단어 선택의 맛을 안다. 번역이 단순히 원문을 잘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원문을 우리말로 돋보이게 창조하는 예술임을 보여준다.
펭귄클래식코리아 : 직역과 의역이 혼재. 어미를 요나 습니다로. 이 점은 호불호가 극명.
더클래식 : 의역이 많은 편이고 원문에 없지만 분위기상 어울리는 문장을 추가하거나 변형했다. 읽기에는 편할 것이다. 그러나 원문 충실도는 떨어짐.
열린책들 : 원문에 가까운 번역. 원문의 문장 구조와 순서를 잘 지킴. 원서랑 같이 읽기에는 가장 좋다.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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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
아카가와 지로 | 씨엘북스 | 2012년
5점 ★★★★★ 끝내줍니다

:: 힌트 주는 고양이

책 표지 보니 읽기에 가벼운 소설로 보였다. 시작부터 살인 사건. 이후 캐릭터와 수사 진행은 만화 같았다. 문체는 간단했다. 빵빵 웃기는 식은 아니고 소소하게 웃기면서 수사가 진행된다.

제목 보면 고양이 홈즈가 주인공인 듯한데, 수사는 말단형사 가타야마 요시타로가 한다. 고양이 주인이 밀실 살인으로 죽자, 고양이는 가타야마한테 맡겨지게 된다. 정확히는, 가타야마의 여동생 하루미가 맡아 키운다.

고양이가 영특해서 사건 해결이 도움이 될 것을 알려준다. 협박장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형사랑 같이 다니면서 이런저런 도움을 준다.

연쇄 살인인데, 딱히 복선이나 단서가 안 보여서 추리는 거의 할 수 없었다. 그저 의문투성이다. 식탁과 의자는 누가 왜 훔쳐갔는지 모르겠고, 밀실인데 살인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고, 건축 관련 비리가 연계된 듯 보이는데...

사건 수사보다는 형사 가타야마의 맞선을 방해하는 유키코의 모습이 더 재미있었다. 추리소설에서 추리보다 연애가 더 재미있다.

계속 사람이 죽어가는 판국에 범인이 누구인지는 오리무중이다. 혼자서 잠복근무를 하던 선배 형사는 범인을 봤다고 말하며 죽고 만다.

"정신이상자가 학생을 살해하고, 모리사키 교수가 살해되고, 학장이 비리를 저지르고, 이번에는 폭탄이 터지고..."(338쪽)

소설 후반부로 가도 도대체 범인을 모르겠더라. 이제 몇 쪽 남지도 않았는데... 이럴 때는 대개가 가장 의심이 안 되는 사람이 범인이다. 역시나 그랬다. 달달했다가 씁쓸하게 끝나네. 와, 이렇게 끝내다니. 가볍게 즐겁게 스트레스 푸는 소설이라더니.

다 끝난 줄 알았더니 또 한 방을 더 먹이네. 징헌 작가다. 또? 아주 끝장을 내는군. 형사/독자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너덜하게 만들다니. 지독한 작가다.

표지에 속지 마라. 고양이, 유머 미스터리, 어리버리한 형사. 속지 마라. 내가 읽어 본 추리소설 중에서 가장 우울하다. 독하고 쓰다.

202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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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 법정
The Burning Court (1937년)

존 딕슨 카
엘릭시르 | 2013년

:: 오컬트 추리소설의 아름다운 개화

추리소설 편집자 에드워드 스티븐스는 논란이 많은 작가의 원고를 읽는 중에 사진 하나를 발견한다. 내 아내가 왜 거기서 나와? 똑같이 생겼다. 마리 도브리. 칠십 년 전 살인죄로 목이 잘린 후 화형까지 당한 여인이다.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차고 있는 팔찌마저 같다. 비소로 많은 사람을 죽인 독살범. 비소 중독은 그 증상이 위염과 유사하다는데...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씻는 사이에, 그 사진이 사라진다. 아내가 의심스럽다. 사진 가져 갔냐고 물으니 완강히 부정한다. 그럼 가정부가 가져 갔나? 뭐지?

최근 고인이 된 마일스 데스파드가 비소 중독으로 죽은 것 같아서 조카 마크 데스파드의 부탁으로 함께 조사에 들어간다. 무덤 파러 간다. 아내의 예언(아마 아무것도 찾지 못할 거예요)대로 관은 텅 비어 있었다. 밀실! 납골당에는 유령이 아닌 이상에야 들어가고 나올 수 없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관에서 시체를 빼서 나갔는가?

혹시 아내는 늙지 않는 마녀? 그 독살범? 존 딕슨 카답게 초반부터 신비롭고 으시시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마녀, 유령, 밀실. 특히, '화형 법정'은 이 신비주의 분위기를 소설 후반부까지 밀고 나아간다. 심지어 죽었던 마일스를 목격한 사람이 나온다. 죽지 않는 인간?

당연히 아니다. 모든 것은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명확히 밝혀진다. 과학적 해답이 기다리고 있다. 이 책 '화형 법정'은 추리소설이다. 공포소설이 아니다. 그렇게 여겼는데... 와 끝에서 이런 맙소사다. 이번에도 본래 계획이 틀어져서 복잡하게 된 유형이었다.

카가 마무리를 로맨스로 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그의 추리소설들은 죄다 어김없이 두 남녀의 사랑 확인으로 끝났었다. 하지만 이 '화형 법정'은 오컬트로 끝난다. 마지막 '에필로그'로 오컬트 추리소설이 아름답게 피어난다. 와, 정말... 반전에 반전이 멋지다.

최고다. 추천한다.

202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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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Slaughterhouse-five (1966년)
커트 보니것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이 소설의 제목은 세 개다. 제5도살장(Slaughterhouse-5), 소년 십자군(The Children's Crusade), 죽음과 억지로 춘 춤(A Duty-Dance with Death). 독자가 마음대로 골라잡으면 그만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미국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다. 미국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전세계 젊은 독자들도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에 열광하고 있다.

[제5도살장]은 그의 대표작으로, 작가 스스로도 A학점을 매긴 작품이다. 그의 장기인 블랙 유머와 SF기법을 현란하게 표현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지은이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보네거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소총수로 참전했다. 

그 전쟁 중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독일의 작센 지방으로 끌려가 드레스덴의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이 포로수용소에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이 가해졌는데, 그는 용하게 살아났다. 옛날에 도살장으로 쓰였던 포로수용소 건물의 지하 방공호가 깊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도살장이었던 곳에서 폭격을 피해 살아나다니, 정말 블랙 유머 같지 않은가.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 것을 눈으로 직접 본 작가는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그 체험을 글로 쓴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으리라. 그러나 그는 그 공포를 유머로 이겨내며 소설로 쓴다. 그 글이 바로 이 작품 [제5도살장]이다.

이 작품은 과거, 현재, 미래가 질서 정연하게(?) 뒤죽박죽으로 전개된다. 또 SF 기법과 포르노 소설 기법으로 독자를 웃기는데, 정말 못 말릴 정도다.

인간의 허위의식과 겉멋만 든 진지함을 꼬집는 독특한 유머가 가히 천재적이다. 이 작가의 유머는 우리의 상상을 넘는다. 트랄화마도르 인(외계인)을 등장시켜 인간을 풍자한다. 예수도.

이 작품 어디를 봐도 심각하고 진지한 표현은 없다. 가벼운 표현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그러나 그런 가벼운 유머 뒤에 숨겨진 작가의 고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의 바탕에는 작가의 어두운 체험(전쟁 체험)과 인류 미래에 대한 종말론적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 '뭐 그런 거지'. 나는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웃었다. 작가도 그 문장을 쓰면서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웃음과 그의 웃음에는 차이가 있다. 작가의 웃음은 전쟁의 공포와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이기려는 안타까운 노력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웃음은 울음의 다른 표현이다. 울음 같은 웃음이다. 작가 스스로 말하길, "울 수 없으니까 웃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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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의 앵무새 Flaubert's Parrot (1984년)
줄리언 반스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을 논할 때 빠짐없이 나오는 소설이 바로 이 '플로베르의 앵무새'다. 워낙 유명해서 모르고 있으면 책하고는 담 쌓고 지내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소설 픽션은 아예 안 읽는 독서가일 것이다.

아직 안 읽어 봤더라도, 플로베르의 평전 형식을 띤 소설이다 정도는 어디선가 읽거나 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막상 실제로 읽기 시작하면서 발생한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읽기 어렵다고 하소연을 한다. 간신히 읽어냈다고, 플로베르 관련 배경 지식이나 그의 소설들을 읽은 후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독후감도 보인다.

어이가 없었다. 너무들 진지하게 문학하는 독서를 하려고들 하는 거 아닌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몰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잡담 농담 평전 수필 소설이다. 아무 페이지나 읽어도 된다. 아무 쪽에서나 읽기를 중단해도 딱히 아쉬울 건 없다.

읽다가 말다가 읽다가 말다가는 반복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열 번 이상은 분명하다. 이야기의 전반인 분위기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이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미라는 미케리누스의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았다."(147쪽) 아씨, 어쩌라고 이 양반아.

딱히 줄거리라고 할 것이 없고 궁금한 다음도 없는데, 아! 이런, 계속 야금야금 더 읽고 싶어지는 거였다. 왜 이러지? 희안하네. 어느새 다 읽어 버린 나 자신한테 배신감을 느낄 지경이었다. 어, 이건 아니지.

천박한 음담패설이 있는가 하면 심오한 통찰이 써 있었다. "삶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에 대해 나는 놀라지 않는다. 책은 삶을 의미 있게 한다. 유일한 문제는 책이 의미를 부여하는 삶은 당신 자신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이라는 점이다."(209쪽)

키득키득 웃다가 으잉 황당하다가, 이런 저질하다가 와 놀랍군 하다가, 이것저것 하다가 어느새 더 읽을 문장이 없은 거였다. 정말 맛있는 짬뽕이었다.

종이책 읽기는 너무 고역이긴 했다. 뭐가 이렇게 빡빡해. 전자책으로 읽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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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멜론 슈거에서 In Watermelon Sugar (1968년)
리처드 브라우티건 | 비채
2024년 5월 개정판 양장본
2007년 10월 초판

브라우티건의 대표작 '미국의 송어낚시'는 겉보기에 단순한 이야기이다.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미국 사회 비판이 흐른다.

[워터멜론 슈거에서]는 1968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미국의 송어낚시]가 나온 다음 해다. 전작에 비해 신랄한 풍자가 적었다. 문체는 단순함에서 아름다움으로 나아갔다. 그래도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역시나 같았다. 은유와 말장난으로, 기계 문명을 비웃으며 목가적인 꿈을 옹호한다.

도시 문명을 떠나 자연 생활을 추구하는 면에서 소로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무척 달랐다. 소로는 한껏 자연 예찬을 했다. 반면, 브라우티건은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바라본다. 소로는 숲 속 오두막에서 숨을 쉬지만 브라우티건은 오염된 강에서 죽어가는 송어를 본다. 회복 불가능한 꿈에서 유령처럼 떠돈다.

브라우티건은 소로의 이야기 방식으로 말할 수 없었다. 1960년대 미국은 이미 기계 문명에 의해서 자연은 물론이고 인간의 정신마저 망가져 버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방식을 취한다. 언어의 유희 속에서 침묵한다. 죽음 위에서 환상을 본다. 현실과 꿈의 중간 지대에서 방황한다.

소설은 '워터멜론 슈거'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한다. 그곳은 현실이면서 꿈인 곳이다. 달콤한 이야기인 듯 하지만 잔인한 이야기다. 꿈은 아름다우나 현실은 추하다. 이야기는 그 모두를 담아 덤덤하게 강물처럼 흐른다.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같지만 꼭 그렇지 않으며, 자연과 문명이 대결하고 화합한다는 의미가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것 같은데 역시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다. 소설에 대한 소설로도 동화로도 시로도 읽힌다. 소설가는 꿈과 현실이 맞닿는 자리인 워터멜론 슈가로 들어가서 절망을 읊조린다.

이처럼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없으면서도 다양한 상상과 갖가지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산문은 드물다. 시처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 은유적 산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또한 모방해서 될 일도 아니다. 시인은 타고날 뿐이다. 시인은 이런 불완전한 세상에 살기에는 너무나 완벽한 존재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감수성의 극한에 이른 자가 택할 길은 안타깝게도 자살밖에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읽는 동안 멍 때리며 즐거운 기분이 드는, 희안하고 휘귀한 책이다. 미국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알 수 없어 더욱 그렇게 읽힌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수록 재미있다. 기묘한 소설이다.

- 덧붙임 1
2007년 구판 편집 오류로 243쪽 작품 해설의 제목을 역자 후기로 해놓았다. 4쇄까지 찍고도 바로잡지 않았다. 6쇄에서도.

- 덧붙임 2
2007년 구판 그림은 소설의 은유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그렸다. 그림이, 다양한 의미로 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방해한다. 표지는 그렇다치고 본문 삽화는 책의 질을 청소년용 소설로 전락시킨다. 본문 그림은 빼는 것이 작가에 대한 예의다.

- 덧붙임 3
2007년 구판 8쪽에 사진을 싣고 "이 사진은 미국 문명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다."고 했는데, 왜 그런지는 도대체가 알 수 없다. 아는 분?

- 덧붙임 4
2007년 구판 김성곤은 작품 해설에서 "브라우티건은 1968년에 벌써 iDeath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2000년대에 등장하게 될 iPod나 iMac을 예견했던 선구자적 작가였다."(251쪽)라고 썼다. 농담이죠?

- 덧붙임 5
2024년 5월 24일 개정판이 나왔다. 덧붙임 1과 2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드디어!
어, 잘 보니까 제목이 슈에서 슈로 바뀌었다.

개정판 워터멜론 슈거에서
초판 워터멜론 슈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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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도시들
- 이탈로 칼비노 지음
- 이현경 옮김

- 민음사 펴냄

 


이 작품의 국내 첫 번역본은 1991년 청담사에서 펴냈다. 당시에는 극소수 독서가들한테만 알려진, 아주 특이하고 무척 희안하지만 잘 읽혀지지도 잘 팔리지도 않는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별종들이 읽었다. 주변 몇몇 독서가들한테 권했지만 실제로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개들 읽기 어렵다고 포기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다며 불평했다.

청담사 번역자가 민음사와 같은 이현경이 아니라 박상진이다. 당시 책 가격이 3천원이었다. 책이 시집처럼 두께가 얇았다. 싼 가격과 적은 부피로 짐작해서 읽기 전에는 서사시인 줄 알았다. 세월이 흘러 책은 사라졌고 내 기억에서 멀어졌다. 그러다가 민음사에서 다시 나왔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탈리아 작가 중 가장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이탈로 칼비노의 1972년 발표작이다. 기호학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진수를 보여준다. 세계와 삶의 본질을 환상으로 진지하게 탐구한다.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의 여행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독자는 신비롭고 이상하고 야릇하고 독특하고 매력적인 칼비노의 언어가 만든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여행한다. 다분히 추상적인 것들을 마치 눈에 보이는 도시로 묘사한다.

 


칼비노가 만든 '언어' 도시를 보기 위해서는 애를 먹기 쉽다. 기호학적인 면이 두드러진 이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은, 사물과 그 이름은 인과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여 작가가 마음대로 재구성하고 재편성하여 놓았다. 기존 소설 독법으로 읽다가는 몇 쪽 읽다가 책을 던져 버리기 쉽다. 

환상적인 독서 체험을 위해서는 독자가 노력을 해야 한다. 칼비노는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이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직 제안만 한다. 이것인 것 같다는 투다. 글에 공백이 많다. 그걸 채우는 것은 독자다. 이 여백을 상상력으로 채워야 이 걸작을 맛볼 수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충돌은 매력적이면서 난해하다. 각 도시들은 철학적이면서 우화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작가는 '도시'를 보기 위한 방법을 중간에 가르쳐 준다. 이렇게 해서 독자와 작가의 게임이 시작된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놀이처럼 작가가 숨긴 의미를 독자는 작가가 쓴 글에서 찾는다. 여기에 소설 구성의 치밀함이 있다.

도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존재하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존재하기도 한다. 자, 당신은 과연 이런 도시를 볼 수 있을까? 도전해 보라. 상상력을 발휘하면 언어의 도시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대단히 산만해보이지만 수학으로 만든 글 구조물이다. 목차를 보면 설계도가 보인다. 총 9부다. 1부와 9부는 10개 도시를, 나머지 부는 5개의 도시를 묘사한다.

10 x 2 + 5 x 7 = 20 + 35 = 55 

55개의 도시들은 11개의 주제(기억, 욕망, 기호들, 교환, 섬세함, 눈, 이름, 죽은 자들, 하늘, 지속됨, 숨겨짐 등)별로 5개의 도시들이 묘사된다.

55 = 11 x 5

이상의 글 구조물은 작가가 독자한테 스스로 맞춰 원하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제안한다. 페이지를 순서대로 넘기며 읽는 것은 여러 읽기 중에 하나일 뿐이다. 작가가 목차로 제시한 주제의 도시들만 읽을 수 있다. 심지어 55개의 도시들 묘사를 모조리 무시하고 각 부의 앞뒤에 있는 '마르크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대화'만 남기고 스스로 55개의 도시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마지막 읽기의 경지에 이르면 당신은 독자의 경계를 뛰어넘어 작가가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은 목소리가 아닙니다. 귀입니다."(172쪽) 의미를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읽는 사람의 해석, 즉 귀다. 작가가 쓴 이야기인 목소리는 독자가 읽는 이야기인 의미와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다.

처음에는 말장난 기호로 만든 도시로 보이나 뒤로 갈수록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도시로 느껴진다. 이 소설이 말하는 도시는 사람들이 천국 혹은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는 바로 우리 세상임을 깨닫는다.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208쪽)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2014년 12월 13일, 세 번 읽게 되었다. 여전히 술술 읽히지 않는다. 이틀이나 걸렸다. 자유도가 지나치게 높은 게임 같다. 텍스트는 텍스트대로 흐르고 나의 상상은 나의 상상대로 달린다. 처음 읽었을 때 읽기 너무 힘들었던 것을 이제는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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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작가 자신이 쓴 연보에 작가의 우스개가 넘친다. 소개하면 이렇다. 1950년대, 따분했다. 1983년, 크게 게으름피우다. 더 웃기는 것은 1988년, 이 작품으로 상을 탄 돈을 전액 경마에 걸어 잃었다고 솔직하게 버젓이 적고 있다는 사실이다.

별로 자랑거리는 아닐텐데. 내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한국어판 서문에 보이듯 미시마 유키오가 천황제, 군국주의 등과 연결되는 사람이라 그 반감의 표현으로 그런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한몫 벌어 보려고 했나?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이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에 대해 비평한 소설이다. 소설에 대한 소설이다. 말장난이라고? 그렇다.

우리는 근대 소설의 어법에 익숙해서 이런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말장난하고 있네, 신기하군, 새롭다 따위가 고작이다. 또 이런 소설을 읽고자 마음먹는 독자의 대부분은 그저 새롭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새롭다는 느낌보다 무섭다는 느낌이 더 드는 소설이다. 왜냐하면 소설에 대한 우리의 기존 생각을 완전하게 비웃고 있는 것을 넘어 완전한 전환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은 소설 장르의 해체와 구태의연한 근대 소설을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찾으려 한다. 포스트모던 소설가들은 소설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기존 소설의 매너리즘을 과감하게 타파하려고 노력한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겉만 보면 야구 이야기일 뿐이고 속을 보면 기존 문학에 대한 신랄한 비웃음이다.

이 소설의 첫 부분부터 어리둥절할 것이다. 수고양이라면 '365일의 반찬 백과', 암고양이라면 '다자이 오사무 주간'. 이것은 흔히 소설에서 작가와 독자가 이름이란 것에 집착하는 것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사물은 이름과 상관없이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한다. 이것은 흔히 상품 자체에 상관없이 상표 이름에 현혹되는 소비자처럼 우리는 소설의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에 집착한다.

르나르의 '박물지'와 한 소설가 쓴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소설을 대조해 놀랍도록 닮은 곳을 제시해 보이면서, 순수한 창조 행위로 믿었던 문학을 단순히 주어진 정보의 재구성에 지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제4장에는 발빠른 닭과 배고픈 늑대 이야기가 나오는데, 소설은 꼭 이야기 구조를 가져야 하며 사건의 인과관계와 철저한 묘사로 독자의 감동을 유발해야 한다는 것을 완벽하게 뒤집고 있다.

물론 이 소설은 야구를 재미있게 묘사하는 부분도 있다. "오! 이런 표현이 가능하구나." 하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 아기자기한 야구광의 이야기는 소설의 실험성과 별도로 재미있다.

이 책이 스포츠 코너에 있는 것을 종종 봤다고 작가는 서문에 쓰고 있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에서도 이 책을 스포츠로 분류해서 비치해 놓을 걸, 내가 직접 봤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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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자스의 유령 The Phantom of Kansas
- 존 발리 지음
- 안태민 옮김
- 불새 펴냄

 

 

과학소설이 재미있다고 하면, 대개는 그 과학적 상상력의 재미를 뜻한다. 존 발리의 단편소설은 거기에 하나를 더했다. 수수께끼. 궁금증을 유발한 후 논리적으로 해답을 제시한다. 미스터리 수법을 쓰기 때문에 진짜 재미있다. 의문을 풀기 위해서 다 읽을 수밖에 없도록 이야기를 써 놓았다.

'캔자스의 유령'은 그 자체로 대단히 흥미로운 미래사회 설정을 보여준다. 은행의 주업무가 돈이 아닌 사람의 기억을 저장하는 일이다. 사람들을 사실상 거의 영생을 산다. 육체에 저장된 기억을 넣어서 계속 사는 것이다. 따라서 살인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계속 죽이려는 자가 있다. 이미 세 번이나 죽였다. 그때마다 육체를 갈아타서 살아나긴 했다.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 폭스는 과연 범인 누구이고 왜 그러지는 알아내고자 한다.

미래 과학 상상력을 빼고 보면, 빼어난 미스터리 소설이다. 이 소설이 기존 추리소설보다 재미있다. 독특한 미래 사회 설정 때문에 기존 추리소설의 수사수법으로는 범인을 잡을 수 없다. 육체개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문도 성별도 의미가 없다. 그나마 유일한 신분 확인 방법은 유전자 검사뿐이다. 과연 범인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작가 존 발리는 이 소설에서 의도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추리소설의 규칙과 명칭을 가져다 비틀어 표현한다. 후만추, 모리아티가 인용된다. 중앙컴퓨터가 셜록 홈즈처럼 말한다. "유의미한 대답을 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자료가 축적되지 않았습니다. '왜'냐는 질문은 언제나 대답하기 힘든 질문입니다." 게다가 '붉은 청어'라는 용도도 나온다.

짐작했던 자가 범인이라서 김이 샌 상태에서 계속 읽었는데, 이야기 후반부에서 인간적인 컴퓨터의 모습에 놀라 감탄했다.

'공습'은 미래사회의 사람들이 시간여행을 이용해서 과거 시대의 추락 직전 비행기에 공습해서 사람들을 납치하는 이야기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1989년 영화 4차원 도시(원제 밀레니엄 Millennium)는 이 단편소설의 상황을 가져다 로맨틱 코미디로 만들어 버렸다.

'역행하는 여름'은 한 사람당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날 수밖에 없는 미래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에게 누나가 있는지 그 의문을 푸는 이야기다. 핵가족과 기존 가족 제도에 유쾌한 웃음 한 방을 선사한다.

'블랙홀, 지나가다'는 낭만적 사랑 이야기와 음란소설의 과학소설 버전이다.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우주 미아가 되어 버린 남자가 여자의 지혜로 구조된다는 이야기다. 성교를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나름 웃긴다.

'화성의 왕궁에서'는 화성 탐사를 하러갔다가 사고를 당해서 생존 투쟁 끝에 화성 개척민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탐사대는 화성에서 태양계 행성 궤도와 움직임을 재현한 기계 모형을 발견하는데... 화성인에 대한 긍정적이고 참신한 해석이 돋보인다.

2024년 2월 26일 현재
서점에서 새 책으로 구할 수 없다. 전자책으로 나와 있지도 않다.
헌책을 구하거나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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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러스 애덤스
책세상
2005.12.20.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으려는 분을 위한 안내서
혹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으려는 분이 알아야 할 10가지
혹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으려는 분을 위한 도움말

1. 1권 초반부 외계인의 지구 폭발까지 읽어야 이 책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그 다음부터는 읽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각자 느낌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라. 애써 한 글자 한 글자 다 읽을 의무는 없다.

2. 이 책이 웃긴다는 소문을 듣고 읽으려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개그 콘서트 웃음을 바라지 말 것. 영국식 유머다. 우리랑 다르다. 바로 웃기는 게 아니라 좀 있다가 웃긴다.

3. 어느 정도의 인문·사회과학·자연과학·철학·예술 상식이 있으면 좋다. 그런 상식이 없어도 읽을 수 있으나 크게 웃을 수는 없을 것이다.

4. 여유가 없는 사람은 이 책을 읽으려 들어서는 안 된다. 점심을 먹은 후 나른한 오후에 딱히 할 일 없는, 그런 한가함이 있어야 한다.

5. 이 책은 코믹 SF다. 하드코어 SF를 바라지 마라.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왜냐고 따질 사람은 다른 책을 읽어라.

6. 커트 보네거트라는 작가를 아는가. 알면 제대로 찾아 왔다. 같은 종족이다. 블랙 유머를 즐겨라.

7. 이 책에서 지구가 멸망하고 우주가 사라져도 당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무해하다. 다시, 이 책은 대체로 무해하다.

8.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왜 42인지는 5권에 나온다. 거기서 이야기는 끝난다.

9. 이 소설이 진지하지 못하다는 평은 무시하라. 이 소설을 끝까지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10. 마음껏 웃어라. 그러라고 쓴 책이다.

지구가 사라져도 쫄지 마라

코믹 에스에프 소설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무척 일상적인 얘기를 우주적 차원으로 놓고서 수다를 떤다.

제목부터가 여행 안내서를 따서 만들었다. 자동차 얻어 타는 걸 우주선 얻어 타는 걸로 살짝 바꾸고, 도로 만든다고 자기 집 부수는 국가를 우주 도로 놓겠다고 지구 부수는 외계인으로 슬쩍 함께 놓았다.

주인공이 하는 일이라는 게 한심하게 일상적인 일이다. 점심 먹고 차 마시고 맥주 먹고 샌드위치 만들고. 이런 게 과연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1권 끝부분에서 점심 먹는 걸 우주 철학으로 끌어 올리는 문장을 읽는다면 정말 재미있다는 걸 감 잡을 수 있다.

영국식 유머는 독특한 찌름이 있다. 무척 평범한 걸 끌어다가 묘한 독특함을 끌어낸다. 게다가, 이 소설가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지식을 끌어다가 우스개로 재배열시킨다. 방대한 양의 익살이다.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은 걸 할 줄 알지만 고작 시시한 일만 해서 우울증에 걸린 로봇 얘기는 유머의 심리학이다.

완성작은 무려 5권이나 되지만, 그 시작은 무척 미미했다. 처음에는 간략한 라디오 드라마였단다. 시시껄렁하게 대충 만든 거였다. 그러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인기를 끌어서 연작이 되고 마침내 소설로 나온다. 영화는 작가의 사후에 나왔다.

이 소설을 쓴 더글러스 애담스는 부조리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건강하려고 운동하다가 심장마비로 가셨다. 그렇게 가셨다. 부조리 소설가의 부조리한 죽음이여!

소설은 지루한 편이다. 단, 처음에 읽을 때만. 아마 통독하기 만만치 않으리라. 반면, 영화는 경쾌하다. 원작을 너무 줄여 놓아서 심오함이 없지만.

성질 급한 분은 이 소설도 영화도 피하시는 게 좋다. 시간이 넉넉하고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바로 그때 이 소설과 영화를 거들떠 보길 바란다. 우주적 농담으로 해탈하길 바란다.

이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지구가 사라져도 쫄지 마라. 괜찮다. 대체로 무해하니. 안심하라."

서글픈 농담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도서관이었다. SF를 좋아하는 한 분이 적극 추천했다. 막상 읽기 시작하자 재미없었다. 그렇게 재미있다는 책이 이렇게 재미없고 따분하다니. 그나마 재미있었던 것은 1권 마지막 부분에 있는 점심과 관련된 농담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내게서 잊혀졌다. 몇 년만이었을까. 10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일 것이다. 적어도 12년만일 것이다. 이 책을 다시 만났다. 시립도서관에 5권까지 나란히 꼽혀 있었다! 완결된 모양이네. 책을 펴서 보니, 작가는 불합리하게 저 위로 가셨다. 심장마비로 죽은 대학 동기가 있어서 우습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해진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가셨군요. 뭐 그런. 일단 1권을 대여해서 과연 다시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 보려 했다. 역시나 잘 안 읽혔다. 나랑 안 맞나 보군. 그래도 모르지 싶어 갖고 다녔다.

조카 시험 보는 데 따라갔다가 한참을 기다려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게 뭐람. 다시 이 책을 펴 들어 읽었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교정 한 구석 의자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시작부터가 나랑 비슷한 상황이다. 딱히 할 일이 없어 한가함에 둥둥 떠있는 모습. 나는 책에 빠져들었다.

며칠 후 5권까지 다 읽었다. 애써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을 필요는 없다 싶었다. 건너 뛰고 싶으면 그냥 건너 뛰었다. 그런다고 누가 뭐랄 사람도 없지 않은가. 재미와 흥분을 거치고서 끝 부분에 이르자 평범하지만 그래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맞다 싶게 끝났다.

글쓴이가 상당히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철학, 문학, 경제학, 역사, 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그런 지식을 고작 이런 농담에나 쓸 정도밖에 안 되다니. 서글펐다. 글을 썼던 시대 상황도 무시할 수 없었겠지. 뭐 지금이라고 상황이 더 나아졌다고 볼 순 없지만.

영국식 농담에 대한 이해가 아직 덜 된 탓인지, 더글러스 애덤스 스타일에 익숙치 않아서인지, 이 소설은 여전히 내게 낯설고 썩 잘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언젠가 또 한가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 아서 덴트처럼 훌쩍 지구를 떠나 은하계를 여행하고 싶다.

겁먹지 말고 일단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는 거다. 히치하이커의 기본 자세는 그거다. 책 읽으려는 몽상가가 그러하듯. 지구를 떠나고 싶을 땐 그렇게.

1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아커를 위한 안내서 : 영국식 농담에 SF와 철학의 양념을 뿌린 소설

사는 게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느낀 적이 언제였더라.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지긋지긋한 것이 아니라 지루했던 것이었겠지. 하지만 내겐 지긋지긋한 것이나 지루한 것이나 똑같다. 지루해지면 지긋지긋해진다. 지긋지긋해지면서 지루해진다. 봐라, 뭐가 다른가. 똑같지. 지금 왜 지루함과 지긋지긋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모르겠다.

번역의 문제인지, 내 독서 방법의 문제인지, 묘사가 지루해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은 통독을 거부했다. 대학생 때 이 책을 처음 봤다. 그때 철거 공사 장면까지만 읽고 책 끝에 있는 점심 얘기를 읽었다. 점심 얘기는 마음에 들었다. 마침 배가 고플 때 읽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오늘 2006년 11월 27일 통독했다. 신비스러운 우주의 기운을 받지 않고서야 이럴 수 있을까. 신비로운 기운은 무슨, 개뿔. 내가 철이 든 것일까. 남자가 철드는 거 봤냐. 그저 나이가 든 것이다.

가장 심각한 일이 가장 우스꽝스럽다. 사람 죽는 게 그렇다. 이 책의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는 2001년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던 중 심장 마비에 걸려 사망했다. 지구가 멸망하는 모습이 이 책에서 가장 우습다.

이 책이 내게 준 교훈은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 살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나친 심각함은 두통을, 지나친 진지함은 냉소를, 지나친 완벽은 절망을 낳는다. 철학적 농담이 주는 여유, 그게 더글러스 애덤스가 주는 선물이다.

이런 철학적 농담 SF가 아니라 진짜 철학 SF를 읽고 싶다면,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를 읽어 볼 것. 영화로 보지 말 것. 꼭 책으로 읽을 것!

‘솔라리스’의 인식 철학에 따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보면 이렇다. 지구가 멸망하고 우주로 나가 외계인을 만나고 수다를 떨고 로봇 컴퓨터랑 대화를 해도 결국 우리 인류의 얘기이다.

영국을 떠났어도 아서 덴트는 여전히 영국 얘기를 하고 있다. 홍차에 뭐에. 영국식 농담에 SF와 철학의 양념을 뿌렸다.이 지긋지긋한 지구를 떠나는 방법을, 작가는 1권 맨 앞에 적어 놓았다. 물론 농담이다. 진짜 전화하려고?

2권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 : 우주 종말과 시간 여행

왜 사람들은 2권을 읽지 않았을까? 도서관에서 3권을 빌렸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 2, 3. 1권은 많은 사람들이 대출해서 읽었는지 책 가운데가 쩍 갈라졌다. 예전에도 1권이 없어서 대출을 못 했으니 1권의 인기는 대단한 것 같다.

2권은 앞부분만 조금 읽었는지 앞표지가 접힌 흔적이 있다. 하지만 3권은 아무도 읽지 않은 듯 표지를 접은 흔적이 없다. 새 것처럼 보인다. 4, 5권은 아마도 3권과 비슷한 운명으로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으리라. 내가 집어 읽어 주기를 기다리면서.

책보다 이 책을 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아마도 1권은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 궁금해서 다들 읽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역시 공감하기 어려운 영국식 농담과 이해하기 어려운 박학다식 잡담(예술과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어느 정도 상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다.)에 대해 회의적이었던지 2권은 조금 거들떠보고 3권은 아예 안 봤다.

2권은 우주의 종말과 시간 여행을 다루었다. 주인공 아서 덴트는 지구의 과거로 간다. 석기 시대인 듯. 1권과 마찬가지로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마도 3권에서 답이 나올 듯하다.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전개되고 농담은 흐른다.

서양인은 왜 그리 성경 이야기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종말, 구세주, 사과 이야기에 왜 그리 집착하는 걸까. 이 책에도 나온다.

로봇 마빈의 대사가 걸작이다. 1권이었나 2권이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런 말을 한다. 삶을 외면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어도 좋아하기는 어렵다고. 정말이지 정곡을 찌르는 우울한 대사 아닌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등장 인물이 바로 이 로봇이다.

정확히 똑같은 스타일은 아니지만 같은 종류로 묶을 수 있는 작가가 있다. 미국 사람 커트 보네거트다. 이 사람이 더 냉소적이다. 더 종말론적이다. 더 웃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소설 '갈라파고스'의 만다락스와 '제5도살장'의 새가 겹쳐 보였다.

이제 읽는 속도가 붙었으니 3권은 후다닥 읽어 치울 듯하다.

3권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 무심한 사람의 무의미한 수다

도서관에 갔다. 1, 2권을 반납했다. 4, 5권을 빌렸다. 예상대로 4, 5권은 깨끗했다. 사서의 손과 나의 손을 제외하고 이 책을 만졌던 손은 없었을 것만 같은 그런 모습으로 4, 5권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4권은 두 권이나 있지? 인기가 좋아서 두 권씩 갖춰 놓은 거 아닐까. 그렇다면 내 짐작이 틀린 거잖아.

크리켓 얘기가 나온다. 영국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스포츠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가끔 이 경기 장면을 본 적은 있다. 야구랑 비슷하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전을 찾아봤다. 영국의 국기(國技)란다. 한 팀에 11명. 이 경기의 트로피가 이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떻게? 그냥. 주인공 아서 덴트는 우주의 파괴를 막는다. 진지하게 의도적으로 막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냥 어쩌다가 그냥 그렇게.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왜 42인지'에 대한 설명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내가 정말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던 거로 보이네. 천만에 말씀이다.

다음 편에서 얘기해 줄라고 그러는지 이제 한 술 더 떠서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역시나 아서 덴트는 그런 거에 관심이 없다. 나도 관심이 없다.

핵무기와 냉전으로 요약할 수 있었던 지난 1980년대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실의 그런 부조리에 지긋지긋해진 작가의 끝없는 불만과 불평이 이런 수다로 나온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고 핵무기의 위험과 전쟁의 도발과 인류의 멸망에서 자유로운 시대는 아니다.

4권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 잠을 주는 수다

4권은 주인공 아서 덴트의 연애 이야기다. 피터팬처럼 남자와 여자가 날아다닌다. 왜냐고 묻지 마라. 여기 4권까지 읽은 당신이 내게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돌고래가 인간에게 남기고 간 어항 이야기도 나온다.

3권에서 예고했던 그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는다.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직접 읽어 보라. 다들 그 메시지에 별 관심이 없으리라 믿는다. 여기 4권까지 읽었다면 말이다. 그나마 4권에서 읽을 만한 농담은 그게 다다. 1권의 점심 농담처럼.

참고로, 다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에 대한 해답이 왜 42인지'에 대한 설명은 4권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5권에서 나오나?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내가 정말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던 거로 보이네. 천만에 말씀이다.

주변 사람들 중에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4권”을 읽어 보라고 권하라. 수면제보다 이 책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게다가 부작용도 없다. 대체로 무해하다. 1980년대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핵무기와 빨갱이. 정말 옛날 책이다.

5권 대체로 무해함 :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해답은 42

지구를 떠나 외계에 정착해도 주인공 아서 덴트는 여전히 지구인의 그저 그런 일상을 산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자식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나와 상관없다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무시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결국 그 일들은 무관심했던 나에게 영향을 미쳤고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 수많은 우연과 부조리와 불합리가 어처구니없이 많이 발생하는 세상이다.

목숨을 걸만큼 대단하고 소중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소중한 것을 버리고 하찮은 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무모하고도 어리석고도 이상한 일을 했던가.

그 많은 전쟁과 그 많은 죽음이 과연 그 하찮은 것을 위해 희생되었어야 하는가. 우리의 슬픔은 거기서 시작되었기에, 우리는 그저 울거나 웃을 수밖에 없다.

오직 종말이 있을 뿐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었는데 예전에 잘못 읽었다. 이 소설의 끝은 종말이지 사랑이 아니었다. 예전에 대충 빨리 읽고 내 맘대로 나 좋을 대로 결말을 짓고 그렇게 기억했던 것이었다.

이 소설은 그 어떤 희망도 심지 않는다. 오직 종말이 있을 뿐이다. 세상은 끝장나고 그걸로 끝이다.

산만하고 엉뚱하고 복잡해 보여도, 이 잡다한 것들을 모두 연결시켜 이야기라는 인과논리의 그물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구사하는 농담의 차원이 상당히 지적이고 무척 철학적이다.

작가의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세계관/인생관이 다소 불편할 수 있고 이를 표현하는 블랙유머도 불편할 수 있겠다.

참고로, 5권 합본 끝에는 부록으로 등장인물 설명이 있다. 이야기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을 읽으려면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루하루 바쁘다는 말과 시간없다는 말을 거의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을 읽어내긴 불가능할 것이다.

201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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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은 우리나라 청소년에게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일본 SF 대작이다. 워낙 추천이 많았다.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 보았다. 은하영웅전설은 은하제국의 야심가 라인하르트와 그에 맞서는 자유행성동맹의 명장 얀 웬리의 승부를 다루고 있다.

서기 2081년 인류는 지구를 탈출하여 알테바단계의 제2행성 테모리아로 정치적 통일의 무대를 옮겨 은하제국의 성립을 선언하고 그 해를 우주력 1년이라고 명명한다. 은하제국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독재로 세워진 국가다.

은하제국에에서는 루돌프의 반대파를 철저하게 숙청하자, 그 반대파 중 몇 명이 도망쳐서 민주공화제를 신조로 삼는 자유행성동맹을 결성한다. 또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사이에 상업 자유 무역 국가인 페잔 자치령이 세워진다. 은하제국과 행성동맹은 전면전에 돌입한다. 이 전쟁에 젊은 두 영웅이 등장한다.

아름다운 금발과 날카로운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귀공자로서 전쟁의 천재인 은하제국의 로엔그람 폰 라인하르트. 역사학을 배우기 위해 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자기 뜻과는 반대로 군인이 되었고 전쟁을 싫어하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동맹군 대장 얀 웬리. 이들은 바로 그 두 영웅이다.

또 이 두 국가의 경제력을 휘어잡아 우주를 지배하려는 페잔의 영주인 아드리언 루빈스키. 그 루빈스키를 조종하는 지구교 총대주교는 인류의 중심을 다시 지구로 돌리려 한다. 이들이 벌이는 음모와 야심과 전쟁과 사랑과 우정이 우주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얀과 라인하르트의 펼치는 우주 전함 싸움의 전략과 전술이 이 소설의 재미다. 얀은 전쟁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또 전쟁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고 자신의 목숨은 결코 전쟁에 바치지 않는 정치꾼들에게도 냉소를 보낸다. 라인하르트는 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야망을 갖고 출세를 향해 돌진한다. 목숨은 중시하지 않고 오로지 승리에 집착한다.

이 SF를 청소년용 SF라고 단순하게 볼 수가 없는 것은 대비되고 있는 정치형태와 등장 인물의 성격이 진지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 정치에 대한 작가의 역사적 통찰력이다. 작품의 서술 흐름이 꼭 역사가의 구술처럼 진행된다. 이것은 작가가 얀의 입장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정치에 대한 냉소와 지난 인류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 것이 작가와 얀이 똑같다.

민주 공화정인 민주 체재인 자유행성동맹와 전체 군정의 독재 체재인 은하제국의 정치적 변화도 눈 여겨 볼 가치가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입맛이 씁쓸했다. 자유 행성 동맹에서 일어난 쿠데타는 우리나라 근현대 정치사를 보는 것 같았다.

읽을 가치는 충분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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